11월 30일 [十一月三十日]
선봉진이 보고합니다. 이달 20일에 작성하여 27일에 도착한 서산군수 성하영의 보고 내용에, “부대가 행군하여 부여에 도착하여 무사히 군대를 주둔하고 숙박한 사정은 이미 급히 보고하였습니다. 그리고 홍산을 향해 출발하여 부여 근방 30리가량에 도착하여 정탐하니 곧 그 곳 마을은 본래 동도가 기포한 곳이라고 합니다. 그 때문에 대관 윤영성, 교장 장대규·정인갑으로 하여금 부대 하나를 거느리고 그 곳 마을을 포위하게 하고, 그 마을 사람으로 하여금 비류의 거괴를 수색하여 잡아들이게 하여 자세히 조사하여 죄상을 알게 되었습니다.
김이운·강공진·강원형·강팔복·이명옥 등 5놈의 죄는 용서받을 수가 없어서 곧바로 총살하였습니다. 홍산 고당리의 마을 주민들이 비류 최상윤·전묵진을 잡아 바쳤으므로 상세히 조사한 뒤에 역시 즉시 총살하였습니다. 홍산읍에 도착하여 군대를 주둔하고 숙박하면서 전하는 말을 들으니 ‘한산·서천 등지에서 비도가 막 무리를 모아 소란하다’고 하기 때문에 지금 마침 저 위의 두 읍을 향해 출발한다는 사정을 보고 드립니다.
21일에 작성하여 29일에 도착한 같은 군수《성하영》의 보고 내용에, “이달 20일에 홍산현에서부터 한산군을 향해 출발한 연유는 이미 급히 보고하였거니와 이날 오시 경에 한산에 도착하니 성에 가득한 인가가 모두 불에 타버렸고 각처의 관아는 다만 사방의 벽만 남아 있었습니다. 아전과 백성들이 부르짖고 통곡하는 모습이 참담하여 차마 볼 수가 없으므로 불러서 어루만지고 효유하였습니다. 그리고 적군의 형세를 정탐하니 서천과 한산 두 곳에 주둔한 비류가 갑자기 서천읍을 침입하여 불을 지르고 성을 함락하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한산 수성장 김련과 호장 김하은으로 하여금 각별히 수성군과 읍의 관속 수백 명을 거느리고 힘껏 앞에서 인도하게 하고, 홍산 유회장 최학래는 보부상을 거느리고 직접 뒤를 따르고, 병사들은 가운데 서서 앞을 향해 계속 달려 진격하였습니다. 겨우 한산읍의 경계를 벗어났는데 적도는 이미 서천읍에 불을 지르고 들로 가득 물러나왔습니다.
《동학농민군은》문득 대군이 전진하는 것을 보고 남북으로 흩어져서 몇 천 명은 서천의 삼수동 뒤 언덕에 주둔하였고, 몇 천 명은 그 고을 남쪽 연로와 포구 등지에 주둔하였습니다. 북쪽에 주둔한 적군의 형세가 대단히 맹렬하여 깃발이 산에 가득하였고 포성은 우뢰처럼 들렸습니다. 그 때문에 대관 윤영성, 별군관 유석용, 참모 신효식, 교장 장대규·정인갑 등에게 군병 일대를 거느리고 북쪽의 산길을 따라 사살하면서 나누어 공격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대관 이상덕, 참모관 권종석, 교장 이봉춘·이장혁에게는 군병 일대를 거느리고 남쪽의 갓길을 따라 힘껏 곧장 들어가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상하가 협공해 적의 진영을 크게 격파하고, 몇 백 명을 총살하였습니다. 도망친 나머지 무리는 사방으로 흩어져 나뉘어 숨었고, 남쪽에 주둔한 비류들도 역시 이미 도주하여 흩어졌습니다. 해가 이미 저물고 캄캄해져서 쫓아가 잡을 수가 없었기에 회군하여 한산 역촌에 머물러 주둔하고, 사방에 군사를 매복하였다가 적도들을 잡아 죽이니 역시 《그 숫자가》몇 십 명이 되었습니다. 획득한 군 물건을 책자로 작성하여 보고하며, 이후의 일의 상황을 계속 보고할 계획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22일에 작성하여 같은 날에 도착한 같은 군수《성하영》의 보고내용에, “서천과 한산 두 지역에서 적을 격파한 사정은 어제 이미 급히 보고하였거니와 한산 역촌으로부터 21일 묘시 경에 내산·외산·길산 등지로 행군하고 다시 서천 지역에 이르러 김제에 사는 강명선 등 남은 무리 7놈과 대기수라는 이름을 가진 4놈을 쫓아가 체포하여 아울러 즉시 총살하였습니다. 이어서 한산읍 신아포를 향하다가 강을 건너 도주하는 임피에 사는 역적 김해룡 등 7명을 잡아 죽였으며, 해가 이미 저물고 캄캄하여 그대로 그곳 신아포에 진영을 주둔하였습니다. 22일 묘시 경에 포구가로 행군하는데, 포구가의 나루를 지키는 일을 더욱 더 엄하게 단속시키고 백성을 어루만져 편안케 한 후 와초포로부터 다시 활동리로 향하였습니다.
한산읍의 아전과 군교 등이 소 2마리, 돼지 5마리, 술 10동이, 떡 10광주리를 가지고 와 진영 앞에서 기다렸기 때문에 병사들에게 음식을 베풀어 위로하였습니다. 지나는 각처에 한편으로는 위엄을 베풀고, 한편으로는 타일렀습니다. 뒤를 이어 일의 상황을 차례로 급히 보고할 계획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한산과 서천의 두 마을이 비류의 독을 혹독하게 입는 소식을 들음에 참담함을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백성이 거처할 만한 곳을 특별히 조치하고 호남의 연해로 통하는 길을 엄하게 막으라”고 회답하였으며, 또한 각 해당되는 읍에도 공문을 보냈습니다. 병사들이 기운을 떨치고 힘을 다하여 이렇게 크게 승리하였기에 기쁨과 감탄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격려하고 권장하는 방도에는 합당한 포상 은전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획득한 군수 물품에 대한 보고의 책자는 수정하여 올립니다. 한산읍의 아전과 군교 등이 군대를 대접한 것과 처결한 여러 놈의 성명은 애초에 책자를 작성하여 보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올릴 수가 없습니다. 뒤를 이은 상황은 보고문을 기다렸다가 차례로 급히 보고할 계획입니다. 이러한 사정을 보고 드립니다.
제(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