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3일 [同日]
출진한 참모관·별군관이 보고합니다. 이달 초 5일 낙안 벌교 장시에서 출발하여 30리 되는 본군의 초천면(草川面) 척동촌(尺洞村) 앞에 도착하니, 마을사람 몇이 점심 등을 미리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기에, 그 마을 앞으로 들어갔습니다. 쓰러져 가는 모양의 어떤 커다란 집 한 채가 있는데 의심할 것 없이 비류에게 약탈당한 것이 분명하며, 경묘동(京廟洞)의 첨지 나태석(羅太碩)이 이미 우거한 집이었습니다. 그가 즉시 와서 보고 그동안 겪은 바를 다 말해 주고, 나라의 군사가 앞을 지날 때에는 한 광주리 밥과 한 병의 술이라도 대접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며, 작은 소 1마리를 잡고 술과 밥을 갖추어 주었기 때문에 병사와 부대 안의 여러 사람을 음식으로 대접하고 위로하였습니다.
이어서 30리를 행군하여 순천부에 도착하여 군대를 주둔하여 머물렀습니다. 이 순천부는 호남 좌도 바닷가의 큰 고을로서, 작년 6월 이후로 금구의 적괴 김인배 무리가 각처의 비도를 이끌고 10 만의 무리를 지어 성안에 들어앉아 영호도회소(嶺湖都會所)를 설치하고, 무기를 약탈하고 사람들의 돈과 재물을 빼앗고 감히 군수품이라 일컬으며 돈을 배정하고 곡식을 걷는 일을 제멋대로 하였습니다. 아전은 숨고 백성들은 흩어져 읍 전체가 지탱하기 어려웠는데 얼마나 다행인지 지난 12월 초 6일 아전과 백성들이 의기를 떨치고 일어나 출격하여 도집강·접주·접사·성찰(省察)·괴수 등과 나머지 추악한 무리 몇 백 명을 일망타진하여 지금 보는 대로 온 경내가 편안해졌습니다.
그러나 12월 초 10일 좌수영에서 군대를 거느리고 읍에 들어와, 12일 좌수와 공형을 모두 잡아갔고 18일에 총살하였습니다. 온 경내가 죄가 없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두려워하고 겁먹고 있습니다. 짐짓 죄를 성토한 좌수영의 전령을 보니, 동도를 맞이하고 무기를 내어주고 관장을 내쫓고, 백성의 돈과 곡식을 허비하고, 여러 번 불러도 대령하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모두 동도가 날뛰어서 생긴 일이지 본래 좌수·공형이 범한 일이 아닌데, 의병을 일으켰을 때의 읍의 으뜸 직임이 죽임을 당하기에 이른 것은 비록 그 때 실제로 범했는지 여부는 자세하지 않으나 소식을 들으니 몹시 개탄스럽습니다.
순천부는 오랫동안 수령자리가 비었으며 겁탈과 소요를 두루 겪어 고을 일이 급박하고 일의 단서가 정해지지 않았는데, 거듭 수이향(首吏鄕)이 피살되니 문득 주장할 사람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각별히 전임의 진영(鎭營)과 읍에 있는 이교를 타일러서 엄히 단속하여 성을 지키게 하였으며, 또한 각 면리의 대소민인을 타일러서 그들로 하여금 안도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각별히 여러 읍 백성의 실정을 정탐하니 좌수영과 각 읍의 민간의 병졸이 마음대로 경내를 넘어 《동학농민군을》토벌한다고 핑계대고 양민을 침탈하여 백성들이 오히려 두려워하고 동요하여 편안히 머물러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것을 금하지 않는다면 폐해를 장차 어찌할 수 없으니 특별히 여러 읍에 공문을 내려 이러한 폐해가 없도록 처분을 내려주심이 어떠할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성(城)에 속한 아전과 백성들이 의롭게 계획하여 비적의 거괴를 남김없이 쓸어 없앤 일은 참으로 가상하니 포상을 시행하는 것이 합당하겠습니다. 몸을 떨쳐 제일 먼저 봉기한 아전 성용희(成庸熙)·이영주(李榮柱), 교리 이종갑(李宗甲)·김언찬(金彦燦), 출신 천사성(千士成)·윤성섭(尹成涉) 등 6사람은 특별히 위에 보고하여 포상을 청하여 합당한 격려와 권장하는 은전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순천부에서 여러 날 군대를 머물고 주둔하면서 폐를 끼친 듯해서 다시 부대를 출발하여 막 옥과·순창 등지로 향하여서 지시를 기다릴 계획입니다. 순천부가 총살한 동적의 성명을 책자로 작성하여 아울러 올립니다.
제(題): 책자는 받았다. 아울러 포상할 각 사람을 일체 위로 보고하여 전달하겠거니와 전의 지시에 따라 속히 출하도록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