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일 [同日]
강진현감이 보고합니다. 방금 도착한 사또의 비밀 공문 내용에 “본 현과 병영이 난리를 겪을 때의 전말을 소상히 기록하고 아울러 그때 의리를 다한 사람들의 성명을 모두 책자로 각별히 작성하여 급히 보고하라”고 하셨습니다.
지난 12월 초 4일에 각처의 흉역(凶逆)한 종자들이 장흥에서 수만의 무리를 일으켜 먼저 벽사역에 불을 지르고 그 이튿날 초 5일에 잇달아 장흥부를 함락하고 백성을 도륙하고 그 고을의 수령을 장살하고, 인가를 불태워 연기와 불꽃이 하늘에 가득하였습니다. 강진현은 그곳 장흥부와의 거리가 30리도 되지 않아서 위급한 상황과 《동학농민군이》날뛰는 형세로 순치(脣齒)의 근심이 없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 조각 외로운 성과 같아 성루는 견고하지 않고, 병기는 완비되지 않아 쳐들어오는 적을 방어할 계책이 실로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성을 구할 구원병을 요청하기 위해 그 이튿날 초 6일 첫 새벽에 현감이 초토영으로 단기(單騎)로 급히 갔습니다.
한편 같은 날 유시 경에 장흥을 함락한 흉도들이 홀연 본 강진현 금천면(錦川面) 읍에서 20리 쯤 떨어진 곳으로 부대를 옮기어, 깃발을 세우고 함성을 지르며 포성이 하늘을 진동하였습니다. 그래서 읍에 있던 이향을 또 병영으로 구원을 청하러 보냈으되 미처 응원할 겨를도 없이 그 이튿날 초 7일 진시 경에 흉악한 저 역적들이 차례차례로 내려 와서 성 밖 5리 쯤 되는 곳으로 사방에서 모여들었습니다. 이때에 장교·아전·별포가 성(城)을 등지고 싸우고자 민간 군사를 단속하여 죽일 준비를 하고 있던 터에, 무슨 읍의 운명이 불행한지 안개가 가득하여 아침 해가 뜰 즈음에도 사방이 막혀 지척을 분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때 적진에서 포성이 한 번 나자 삽시간에 성을 포위하고 큰 소리로 외치기를 “죄 없는 민간 군사는 모두 당장에 성을 나가라. 혹 아전붙이[吏屬] 별포 등과 섞여 피살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말하자 민간 군사가 따라서 와해되었습니다.
적도가 이때를 틈타 성을 함락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살육하여 도망쳐서 산 자가 거의 없으며, 인가에 불을 질러 살아남은 자가 하나도 없으니 함락된 읍이 이처럼 혹독한 것은 옛날에도 드물었습니다. 현감이 구원병을 청하고 내려오는 길에 미처 50리도 가지 못해서 이러한 흉한 보고를 들으니 지극히 황공하며 임무를 다하지 못한 책임을 스스로 용납할 곳이 없어 오직 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의리를 다한 군민과 다쳐서 일어나지 못하는 자의 성명을 책자로 작성하여 올리거니와 병영은 본 읍에서 30리 거리에 있어 성을 함락한 전말과 의리를 다한 자들의 이름을 자세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같이 작성하여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제(題): 책자는 받았거니와 위에 보고하여 전달하겠다. 각 사람의 뜨거운 기개와 절의는 늠름하여 탄식과 애석함을 깨닫지 못하겠다. 자연 포상하고 권장하는 은전이 있을 것이며, 비류가 못된 짓을 심하게 한 일은 이미 대강 들은 바이지만 공문을 발송한 후 비로소 보고받았으니 군무에 결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