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연락처
기념재단
TEL. 063-530-9400
박물관
TEL. 063-530-9405
기념관
TEL. 063-530-9451
Fax.
063-538-2893
E-mail.
1894@1894.or.kr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사료 아카이브 로고

SITEMAP 전체메뉴

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양호우선봉일기 兩湖右先鋒日記
일러두기

1895년 2월 1일 맑음 [乙未二月初一日晴]

일본 진영과 그대로 죽산에 머물러 있었다. 당일에 망궐례(望闕禮) 임금을 배알하고 병사들을 쉬게 하면서 5필의 소를 내려 군사를 위로하였다.

○ 죽산 각 면의 백성들이 차와 먹을거리를 성대하게 준비해 와서 바쳤다. 이것 역시 일진(一陣)에 나누어 먹였다.

1895년 2월 2일 저녁에 눈이 내렸다 [初二日暮雪]

당일에 죽산읍에서 출발하여 30리를 가서 백암동(白巖洞)에 이르러니, 동민들이 술과 먹을 것을 푸짐하게 준비하여 바치는데, 그 성의가 볼만하였다. 그대로 40리를 더 행군하여 용인 땅 김량점(金良店)에 이르러 주둔하여 묵었다. 행군해온 거리를 계산하니 70리였다.

○ 충청도 진천현감의 첩보에, “군수용 물품의 종류별 가격과 비상금을 정해진 수량대로 바친 후에 2건을 책자로 만들어 상사(上使, 이두황)에게 올렸더니, 1건은 검토한 뒤 돌려주면서 ‘새로 거두어 상납하는 데 두라’라고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답신하기를, “살펴볼 것이 있어 성책한 것을 받았거니와, 1건은 도로 붙여 내려 보낸다”라고 하였다.

성책(成冊): 장관 이하 병정 366명 각자의 반찬값 2돈씩, 아침저녁 두 때와 점심값 합해 3전, 비상금 3전을 합한 돈 292냥 8전, 짚신 366짝의 값 73냥 2전, 콩 8말의 값 5냥 6돈, 소 1필의 값 180냥. 도합 돈 632냥 6전.

1895년 2월 3일 맑음 [初三日晴]

당일에 김량점(金良店)에서 출발하여 20리를 가서 용인 땅 정포점(丁浦店)에 이르렀다. 용인현령(龍仁縣令) 김순병(金淳秉)이 와서 문후를 여쭈었다. 그대로 30리를 더 행군하였다. 용인현에서는 술과 음식물을 준비하여 바쳤는데, 온 마음을 다하여 정성스레 대접해 주었다. 잠시 쉰 다음에 본진은 다시 10리를 더 행군하여 풍덕천점(豊德川店)에 이르러 주둔하여 묵었다. 일본 진영은 용인읍에 멈추어 묵었다. 당일에 행군한 거리는 40리였다.

1895년 2월 4일 진눈깨비가 내렸다 [初四日雨雪]

당일에 풍덕천점을 출발하여 일본 진영과 같이 용산에 도착하였다. 각 진영이 회합한 후, 만리창(萬里倉) 앞에 이르러 만세를 부르고 입성하였다. 진눈깨비가 펄펄 내리고 있었다. 곧바로 군무아문에 이르러 군무대신을 알현한 후, 군사를 해산하고 귀가하였다. 이때 이미 이경(二更)이었다.

○ 2월 초3일, 본진의 별군관 윤지영·김광수가 보낸 수본에 근거하여, ‘대둔산의 적을 격파한 일’을 군무아문에 베껴서 보고한 것에 대한 제사(題辭)에, “책자로 만들어 바쳤거니와, 남은 잔당들을 토벌하여 흩어버린 것은 더욱 가상하다. 그에 상응하는 상을 논하고 그에 대한 상금을 아뢸 것이다”라고 하였다.

1895년 2월 7일 맑음 [初七日晴]

소명(召命, 신하를 부르는 임금의 명)을 받고 군무대신 조희연(趙羲淵)씨와 출전한 장령(將領) 이하 교장 및 일본군 사관과 함께 오각(午刻)에 입궐하여 대군주폐하를 알현하였다. 완전히 이기고 돌아온 일과 군사들을 사열하는 일을 살피고, ‘해를 넘겨가며 얼마나 노고가 심하였는가?’ 하신 고로, ‘황공하옵니다’하고 조아렸다. 그리고 내려주신 술을 가회정(嘉會亭)에서 공손히 받은 후, 광화문으로 나왔다. 이때 해는 이미 저물고 있었다.

1895년 2월 10일 맑음 [初十日晴]

군무대신 조희연씨와 출전한 장졸 및 일본군 사관과 함께 이른 아침에 통내(統內) 앞 동별영(東別營)에 나란히 모여서 소 5마리를 잡아 군사를 위로하여 먹이니, 일군(一軍)이 만세를 부르고 사졸(士卒)들은 기뻐하며 춤을 추는데, 그 기쁨은 기록으로 다 나타낼 수가 없을 정도였다. 여항의 백성들은 원문(轅門, 병영)을 빙 둘러서서, 서로 손으로 가리키면서 쳐다보는데 그 기뻐하고 평화로운 기색은 이에서 더할 수가 없었다.

1895년 2월 18일 눈 [十八日雪]

지난 해 9월 이후로 출진하여 사용한 군수용품을 아래와 같이 일일이 책자로 만들어 군무아문에 보고한 후에 선봉의 인신(印信)을 몸소 군무아문에 바쳤다.

주석
망궐례(望闕禮)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 지방 수령이 궐패(闕牌) 앞에서 절을 하는 의식. 충성을 나타내는 정규 의식임.
동별영(東別營) 조선시대 훈련도감의 본영이었는데 친군영을 설치한 되 동쪽 별영으로 삼은 곳. 서울 종로구 인의동에 있었다.
이 페이지에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도를 평가해 주세요. 여러분의 의견을 반영하는 재단이 되겠습니다.

56149 전라북도 정읍시 덕천면 동학로 742 TEL. 063-530-9400 FAX. 063-538-2893 E-mail. 1894@1894.or.kr

문화체육관광부 전라북도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