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우에 카오루(井上馨)의 편지(1895년 1월 7일)
삼가 아뢰는 것은 어제 접한, 순창에 있는 우리 동비 토벌군 대장(隊長) 미나미(南)가 보낸 전보에, “전봉준(全琫準), 김개남(金開南) 모두 이미 붙잡혔습니다. 나머지 비적(匪魁) 또한 계속하여 사로잡히고 있습니다. 다만 비도들이 잡혀 묶이게 되면 감사가 제대로 분간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참수를 하니 법에 따라 하라는 지시를 준행할 길이 없습니다. 청컨대 해당 감사에게 신칙하여 비도들을 붙잡게 되면 우리 정토군(征討軍)에게 넘기게 하십시오. 또 참모관, 소모관, 별군관 등이 난을 이용하여 백성들을 성가시게 하고 지방에 해를 끼치고 있습니다. 무릇 이와 같은 벼슬아치들은 좀 더 일찍 철폐해야 한다.”는 등의 말이 있습니다. 동학비당을 조사하는 일은 귀국(조선)의 반적(反賊)들과 관계된 것만 아니라, 우리나라(日本)와 연계된 것이 적지 않습니다. 무릇 비도의 괴수(匪魁)를 체포하면 재빠르게 서울로 압송하여 도착하면 죄상을 신문하여 법을 밝힐 것입니다. 이는 본사(本使, 이노우에)가 일찍이 양력으로 지난 해 12월 27일에 귀국(朝鮮) 외무대신께 조회한 편지의 내용에 명확하게 이야기 하였으며, 문서에도 실려 있습니다. 지금 전보에 의거하여 귀(조선) 지방관이 함부로 죽이는 폐단은 대충 알아볼 수 있습니다. 진실로 이와 같으면 무엇으로 죄를 밝히고 형을 주겠습니까? 서로 호응해줄 것을 청합니다. 귀 대신이 빨리 해당 감사에게 엄하게 신칙하여 사로잡은 비도들을 모두 우리(日本) 정토대(征討隊)에 압송하여 살피고 변별하는 데 편하게 하십시오. 아울러 참모관 소모관에서 별군관에 이르기까지 빨리 소환하여 민심을 편안하게 하고, 화란(禍亂)을 막는 것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일이 잘되시고 날로 복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백작 이노우에 카오루(井上馨)
아(我, 양력) 1895년 정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