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진(本陣)의 군수품을 싣고 온 일겸금군(一兼禁軍) 배용주(裵用珠)의 마필(馬匹)이 성환역에 이르러 죽었기 때문에 마주(馬主)에게 노자(路資) 2냥을 주어서 올려 보냈습니다. 그 연유를 알려드립니다.
개국 503년 10월 19일 진시(辰時, 오전 7~9시)에 선봉장 이규태 (화압)
당해 영문(營門)에 알릴 것.
갑오년 10월 20일 (인)
도순무사 (화압)
주석
일겸금군(一兼禁軍)
일겸(一兼)은 조선시대 궁중의 숙위(宿衛)를 맡은 금군(禁軍)의 7번(番) 가운데서 1번인 겸사복(兼司僕)을 줄여서 이르는 말이다. 효종(孝宗) 3년(1652)에 금군 7백 명 중 내금위(內禁衛)를 1, 2, 3번, 겸사복을 1, 2번, 우림위(羽林衛)를 1, 2번으로 나누어 7개 번으로 하였다가, 순조(純祖) 33년(1833)에 내금위 1백 명을 감축하고 6개 번으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