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도달한 교도중대장(敎導中隊長) 이진호(李軫鎬)가 문의(文義)에서 작성한 성첩(成貼)과 초3일 도달한 첩정(牒呈)과 초3일 증약참(增若站)에서 작성한 성첩과 초4일 도달한 중대장 이진호의 첩정에 의거하면, 초살(剿殺)하고 생포(生捕)한 자의 성명을 다시 문서를 작성해서 보고하라는 뜻으로 제송(題送)하였고, 양찬전(糧饌錢)은 문의(文義), 회덕(悔德:懷德), 옥천(沃川), 공주(公州), 연산(連山) 등 읍(邑)에서 경유함에 따라 공억(供億)한 뒤에 보고하라는 뜻으로 또한 관칙(關飭)하였습니다. 그 연유를 알려드립니다.
개국 503년 11월 초4일 진시(辰時, 오전 7~9시)에 선봉장 이규태
교도대(敎導隊)가 아직도 도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반드시 중도에서 초토(剿討)함으로 인하여 그런 것일 터다. 행군해야 할지 중지해야 할지 정하기 어려울 것이니, 양수(糧需)를 곧 발송하여 그곳으로부터 성화같이 수송하도록 할 것.
갑오년 11월 초8일
도순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