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유시(酉時, 오후 5~7시) 목포진(木浦鎭)에 도착하였는데, 그 날 밤 비가 온 뒤에 풍랑이 크게 일어나 16일 낮과 밤에 이르기까지 그치지 않아서 4일 동안 체류하였으니, 사행(師行)을 생각하면 몹시 송민(悚悶)하오며, 상민(商民)의 보당(步塘)을 철파(撤罷)해 돌아오라는 영칙(令飭)에 의거하여 상리(商理)를 맡은 두 사람을 올려 보냈고, 경포교(京捕校)도 또한 긴관(緊關, 긴요한 관문)이 없기 때문에 내려온 두 포교를 아울러 여기로부터 발송하오며, 연읍(沿邑)의 비류 정형(匪類情形)을 아직 정탐하지 못하고 또 보고한 데도 없으니, 군무(軍務)에 있어서 극히 민망하고 답답합니다. 그 연유를 알려드립니다.
개국 503년 12월 17일 진시(辰時, 오전 7~9시) 선봉장 이규태
도달된 공문을 받아보았거니와 그 곳 상태를 연달아 속히 보고하도록 할 것이며, 상민의 보당과 경포교의 근면은 가상한 일임.
을미년 정월 초4일
군무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