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초 3일 관보 [同日 官報]
순무영이 아뢰기를, “선봉장 이규태의 보고 내용에 ‘지난 10월 25일에 통위영 군사 2개 소대를 거느리고 진격하여 바라보니 적이 높은 봉우리 위에 있으면서 깃발을 줄지어 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공주의 효포봉과 납교봉(蠟橋峰)으로 부대를 나누어 싸움을 독촉하였습니다. 통위영의 대관 신창희(申昌熙)·오창성(吳昌成)이 분발하여 몸을 돌보지 않고, 비류(匪類) 5·60명을 사살하였으며, 그 부상자는 수를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이에 적은 기세가 꺾여 후퇴하여 도망쳤습니다.
또 당일에 서산 군수 성하영은 대관 윤영성(尹泳成)·백락완(白樂浣)·조병완(曺秉完)·이상덕(李相德)과 함께 세 길로 나누어 진격할 때에 적의 우두머리가 가마를 타고 일산(日傘)을 펴고는 깃발을 날리며 호각을 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순식간에 70여 명을 사살하고 2놈을 사로잡았으며 대포와 군기를 노획하였습니다. 또한 경리청 군사 12명은 회선포(回旋砲) 1좌를 노획하였으며, 나머지 다른 비류들은 밤을 타서 도망쳤습니다.
경천점에서 두 차례 싸워 이기고 우리 군사는 한 사람도 다친 바 없었으니 왕의 신령이 내린 것으로, 다행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노획한 군수물자는 책을 만들어 기록하여 올릴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군수물자는 별도로 단자를 만들어 올리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라고 하니 비답하기를, “알았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