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보장 [原報狀]
선봉진에서 보고하는 일입니다. 공주 달동의 접주 장준환은 예전부터 행패가 심하였고 한 읍의 괴수로 지난 25일 호남의 비류가 패하여 돌아간 뒤에도 감히 포(包)를 만들려고 하여 몰래 집으로 돌아왔다고 하니 듣기에 통분하고 놀랐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금월 초 1일에 병사와 공주진영의 포교(捕校)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분통하게도 저 장준환이란 놈이 기미를 알고 도피하여 곧바로 체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의 집을 수색하였더니 깃발을 만들고 모아 놓은 무기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당장에 찾아낸 물건은 총 3자루·환도 1자루·창 13개와 나머지는 설포(設包)하고자 한 각각의 자취들이었습니다. 금월 초 3일에 공주에 사는 전 오위장 본진의 별군관 이상만이 원당(元塘)·당평(丹坪)의 두 마을 장정들을 거느리고 장준환의 뒤를 쫓아 체포하여 본 진영의 앞에 왔습니다.
이번 이상만이 의분을 내고 힘을 다해 괴수를 체포한 일은 대단히 가상하기 때문에 우선 본진에서 엽전 50냥으로 시상하고 또 공주 감영으로부터 별도로 200냥을 주고 두 마을의 동포(洞布)를 탕감하여 권장의 뜻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전 오위장 이상만은 별도로 권장하는 일이 없어서는 안되므로 특별히 처분해야 하며 장준환은 잠시도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본진 앞에서 효수하여 대중의 원통함을 풀어주었습니다.
또 초기에 선봉장이 금월 18일 통위영 영관 장용진이 올린 보고를 보니 금월 15일에 장위영이 일본 병사와 더불어 세 갈래의 길로 노성의 봉수봉 아래로 진군하여 비류를 사살하고 논산의 대촌(大村)과 고봉(高峰) 두 곳으로 진격하여 많은 적을 사살하고 적의 진지를 탈취하니 남은 적이 호남의 경내로 도주하였다고 합니다. 장위영 영관 이두황이 동시에 보고한 내용에 노성에 진군하였다가 갑자기 은진의 황화대에 주둔한 적을 만나 곧 대관 윤희영(尹喜永) 등을 파견하여 나누어 의병(疑兵)을 만들고 영관이 그들을 거느리고 곧바로 적진을 공격하여 사살한 것이 300여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밤에 정산에 도착하여 비류 10명을 잡아 죽였으며 노획한 물자는 책자를 만들어 올려 보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