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9일 관보 [十一月二十九日 官報]
순무영 초기(草記)에 “선봉장 이규태의 보고를 보니 11월 초 5일 교도소(敎導所) 영관 이진호(李軫鎬)의 보고한 내용에 ‘대관 이겸제(李謙濟)가 군사를 거느리고 일본 병사와 함께 청산(靑山)으로부터 옥천 등지로 향하는데 수만의 동비를 보는 대로 사살하여 사살된 자가 흡사 300명이나 되고 생포한 50명 중에 제일 우두머리 서도필(徐道弼) 등 9명은 곧 사살하였으며 접사(接司) 이만영(李晩榮) 등 3놈은 본진에 가두고 38명은 위협을 받아 가담한 자이기에 깨우쳐 귀화시키고 탈취한 군수물자는 읍이 허술한 점이 많아 후환이 있을까 두려워 모두 부숴 녹이라’고 보고하였다고 합니다. 감히 아룁니다”라고 하니 비답하기를, “알았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