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초 7일 [初七日]
호남소모관이 보고한 일입니다. 동비(東匪) 중에 고부(古阜)에 사는 전봉준(全琫準)은 본래 동도(東徒) 중에 제일 먼저 선동한 거괴입니다. 많은 죄상을 낱낱이 들기는 어려우나 대중을 속여 군사를 만들고 관군에 항거하여 주현(州縣)을 타파하고 창고를 불사르며 마을을 겁탈하고 무기고를 탈취하여 양호(兩湖) 천리(千里) 간에 오래도록 사람의 자취[人烟]가 끊어지게 한 것은 모두 이놈의 소행입니다.
옛날 홍산(鴻山)의 역적 이몽학(李夢鶴)은 6곳의 성곽을 함락하였어도 오히려 패역(悖逆)이라 일렀는데, 하물며 60여 성을 함락하고 몇 만 명의 백성을 죽였으며 2∼3명의 읍재(邑宰)를 살해한 것도 이놈≪전봉준≫이 한 짓입니다. 그 죄상을 따져보면 가히 한나라의 황건적(黃巾賊)에 비교되며 오히려 명나라의 유적(流賊)보다 더한 놈이니 조금도 늦추지 말고 그를 섬멸하고 죽여야 합니다.
다행히도 하늘이 길을 가리켜주어 금월 초 2일 밤에 저놈은 김개남(金介男, 혹은 開南)과 서로 만나려고 몰래 순창의 피노리(避老里)를 지나는데 그 마을의 선비 한신현(韓信賢)이 분발해 의거를 하여 김영철(金永徹)·정창욱(丁昌昱) 2사람과 함께 몰래 마을의 장정들을 거느리고 여러 가지로 주선하여 그를 따르는 3놈과 함께 일시에 생포하였습니다. 이른 바 함정을 파고 맹호(猛虎)를 유인한 것이요 그물을 치고 맹금(猛禽)을 기다린 것이니 어찌 성덕의 미친 바가 아님이 없다고 하겠으며, 그리고 삼민(三民)이 분발하여 의거한 일은 어찌 가상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을 권장하는 방법으로 우선 본소(本所)에서 상금 1,000냥을 주려합니다. 죄인 전봉준은 격식을 갖추어 본도 순영≪전라감영≫에 압송하려 하였습니다. 이때에 일본군 주력부대가 읍에 들어와 말하기를, “우리가 남하한 것은 오로지 이 한 놈 때문이니 서로 지키면서 경사(京司)로 압송하여 추국함이 당연하다”고 하면서, 끌고 가려 하였는데 막지 못하고 부득이 죄인 전봉준을 일본인에게 내 준 것으로 그 연유를 보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