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2일 군무아문에 보고함 [十二月十二日 報軍務衙門]
좌선봉진에서 보고하는 일입니다. 장성(長城)에서 이동한 사유를 이미 급히 보고하였거니와 행군하여 40리 지점인 북창참(北倉站)에 도착하여 아무런 탈이 없이 잘 숙박하고 ≪12월≫초 10일 진시 경에 나주목에 도착하여 아무런 탈 없이 숙박하였습니다. 초 7일에 발송하여 초 9일에 도착한 병영의 이문(移文)에, “비류들이 장흥(長興)을 함락하여≪관아로≫들어간 사유를 어제 급히 보고하였거니와, 연이어 전초병이 탐지한 사태를 보니 비류들이 장흥부사를 포살하고 이어 ≪관아를≫불질렀으며 총검으로 사람들을 찔러 죽여 시체가 산과 같이 쌓였고, 피가 흘러 방아공이가 뜰 지경이며 피비린내가 온 성안에 가득합니다. 모든 관아와 인가는 모조리 불에 타고 다만 객사(客舍)만 남았습니다.
≪비류들은≫초 6일 사시 경에 벽사역(碧沙驛)의 뒤 고개에 이동하여 주둔하고, 미시 경에 다시 장흥과 강진 병영 접계인 사인점(舍人店) 앞들에 이동하니 병영과의 거리가 10여 리에 불과합니다. ≪동학농민군의≫흉특한 큰 소리가 낭자하게 전해져 동에서 공격할듯하다가 서쪽을 공격하여 과연 예측하기가 어려움에 미약한 군사로는 방어할 계책이 없어 위급한 화가 급박하게 닥쳐오니 어찌 급하게 보고하지 않겠습니까? 장흥부사가 피살될 적에 관인[印符]이 어느 곳에 떨어졌는지 알지 못하고, 공형도 함께 죽어 일을 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온 성 안이 텅 비었으니 공문이 아직 이르지 않은 것도 억지로 책임지우기가 어렵습니다. 만약 이런 시각에 저들과 상대할 군사가 없으면 병영이 함락되는 환란은 서서 기다리게 되는 것이니, 귀 부대에서 특별히 속히 지원하여 한 영(營)을 보전하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연이어 도착한 공문 내용에, “저들이 사인점(舍人店) 앞들에 이동하여 주둔한 사유를 갑작스레 이미 이문(移文)으로 보고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들은 오늘 사시 경에 강진현을 범하여 들어가 인가에 불을 지르고 포를 쏘아 사살하고 칼로 찔러서 통곡하며 달아난 사정을 보발(步撥)로 빗발치듯 급히 보고하였습니다. 곧바로 병영을 도륙할 것이니 아직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으나, 화가 곧 닥쳐올 것입니다. 다시 급히 이문을 보내니 귀 군진에서 정병을 재촉해 출발시켜 밤낮이 없이 달려가 구원하여 이 한 영(營)을 보전해 주십시오”하였습니다.
초 8일에 발송하여 초 10일에 도착한 이문 내용에, “비류가 강진현을 함락하고 들어간 사유를 어제 이미 발마(撥馬)로 급히 이문을 보냈거니와 동비들이 어제 축시 경에 각처에 이동 주둔하여 지금 3갈래의 길로 영을 침범하려 하는데, 장흥부와 강진현을 지키지 못하여 군사들을 모을 길이 없기 때문에 영암군에 명령하여 포군을 징발하도록 하였습니다. 발마(撥馬)를 보내어 이미 8·9차례나 독촉했는데도 속이고 농간을 부려 곧바로 보내오지 않으니 방심의 환란이 당장에 닥쳐오고 있습니다. 그 군수≪영암군수≫의 하는 바를 헤아려보면 어찌 놀라고 탄식하지 않겠습니까? 바야흐로 장계로 보고하여 처리하려고 하거니와 만약 귀 군진이 지원하여 접응하지 않으면 성이 무너지는 근심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니, 특별히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연이어 도착한 강진현감의 보고문에, “금월 초 7일 진시 경에 비류 10,000여 명이 장흥부로부터 내려와서 사면으로 돌입하여 성을 함락하고 인가에 불을 질러 하나도 남은 것이 없습니다. 장리(將吏)·별포(別砲)·수성군과 성에 가득한 백성들이 포에 맞아 사살되고 도륙되어 살아 도망친 자가 거의 없습니다. 스스로 돌아보건대 직무를 이행하지 못하였으니 삼가 황공하고 두려움을 가누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하니 연달아 일본 진영에 알렸습니다.
대대장 미나미 쇼시로(南少四郞)가 명령하여 3갈래로 군사를 출동하였는데, 대위 이시구로 고세이(石黑光正)는 그의 부하 1개 소대와 2개 분대, 교도중대 2분대를 거느리고 영암 땅으로 나아가고 제 1중대 1소대와 통위병 30명은 능주(綾州)의 땅으로 나아가고 히라기(白木) 중위는 그의 군사와 교도중대의 남은 군사를 거느리고 장흥 땅으로 나아갔습니다. 군사의 수는 모두 일본의 진영에서 거느리기 때문에 확실한 숫자는 보고하지 못합니다. 선봉진에서 거느리는 남은 부대는 진시 경에 60리를 행군하여 유시 경에 무안읍에 도착하여 이상 없이 숙박하고 식사를 한 연유를 알립니다.
제(題): 공문이 도착하였거니와 상황을 계속 보고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