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날 각 읍에 발송한 감결[甘結各邑 同日]
듣건대, ‘본읍은 동학도의 소요를 겪은 뒤로 백성들이 모두 정처 없이 떠돌아 안도하지 못하였고, 지금 다시 분조(分調)를 정할 때에는 더욱 의심하여 깊이 숨고 나타나지 않으므로 읍촌(邑村)이 비었다’고 하니, 민정(民情)을 생각하면 불쌍하고 측은한 마음 견디지 못하겠다. 이처럼 비적이 널리 차있는 때에 본읍의 이민(吏民)만이 어찌 물들지 않았겠느냐? 다만 귀순하여 감화하면 곧 무고한 백성인 것이니, 특별히 치죄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신칙하여 각각 그들 집으로 돌아가서 의심을 갖는 일이 없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