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영별군관 겸 의병소통령이 첩보합니다.
목천의 세성산에 있는 군기(軍器)를 옮겨와 살펴보니 화포(火砲)는 하나도 쓸 만한 것이 없고 단지 몸체가 온전한 것만 겨우 7자루를 취하여 겉으로 위엄을 보이게 하였고 아울러 장창(長金+倉) 1백 50자루를 가져왔으며 그밖의 각가지 것들은 모조리 천안읍(天安邑)에 수송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달 26일 밤에 천안읍에 있으면서 떠도는 말을 들어보니 많은 수의 비도(匪徒)가 홍주(洪州)의 경계로부터 오는데 기세가 매우 씩씩하고 또 대포(大砲) 2좌(坐)를 소지하고 신창(新昌) 경계에 쳐들어와 마구 작란(作亂)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27일 새벽에 병사를 거느리고 신창읍의 10리(里) 밖에 있는 곡교(曲橋)에 가서 머무른 뒤에 그자들의 행적을 연거푸 탐문하였더니, 대략 소문과 같았고 바야흐로 본읍에서 창궐(猖獗)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어 그날 깊은 밤중에 신창현감(新昌縣監)의 사서(私書)를 받아보니, ‘같은 날 오후에 일제히 대흥(大興)을 향하여 갔고 예산(禮山) 등지에도 이와 같다고 하였는데, 형세가 막다른 곳에 몰린 적(敵)을 먼 곳까지 추격할 수 없으므로 우선 동정(動靜)을 살피면서 행군하여 장차 군병을 거느리고 아산(牙山) 땅으로 돌아가 주둔하려고 합니다.
이런 연유를 첩보합니다. 이와 같이 첩보를 올리니 삼가 청하옵건대 살펴서 시행하옵소서. 첩보를 올린 대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상과 같은 첩보를 선봉소(先鋒所)에 올립니다.
개국 503년 10월
군기는 일이 지난 뒤에 천안군에 추송(推送)할 것이며 비류(匪類)의 정형(情形)을 각별하게 정탐하여 혹시라도 폐해가 늘어나지 않도록 할 것.
29일
양호순무선봉(兩湖巡撫先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