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진서산군수가 첩보합니다.
서산(瑞山)과 한산(韓山)의 경계에서 적을 격파한 사유는 어제 이미 치보(馳報)하였거니와, 한산의 역촌(驛村)에서 21일 묘시(卯時, 오전 5~7시) 무렵에 내산(內山), 외산(外山), 길산(吉山) 등지로 행군하여 서천 경계에 이르러 여당(餘黨)으로서 김제(金堤)에 사는 강명선(姜明善) 등 7명과 대기수(大旗手)라는 명색의 4명을 뒤쫓아 붙잡아서 모조리 즉시 총살하였고, 이어 한산읍의 신아포(新牙浦)로 향하여 강을 건너 달아나던 임피(臨陂)의 적 김해룡(金海龍) 등 7명을 붙잡아 죽였습니다. 날이 이미 어두워져서 그대로 신아포에 유진(留陣)하였습니다.
22일 묘시(卯時, 오전 5~7시) 무렵에 행군하면서 연포(沿浦)에 나루를 수비하는 절차 등을 더욱 엄하게 단속을 하고 백성들을 위무하였으며 와초포(瓦草浦)로부터 길을 돌려 활동리(活洞里)로 향하였는데, 한산읍의 이교(吏校) 등이 소 2마리, 돼지 5마리, 술 10동이, 떡 10광주리를 진전(陣前)에 가져 왔으므로 병정들에게 나누어 먹였으며, 지나는 각처마다 한결같이 효칙(曉飭)하였습니다. 향후의 형지(形止)를 차례차례 치보(馳報)할 생각입니다.
이와 같이 첩보를 올리니 삼가 청하옵건대 살펴서 시행하옵소서. 첩보를 올린 대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상과 같이 순무선봉진(巡撫先鋒陣)에 첩보를 올립니다.
개국 503년 11월
마땅히 전보(轉報)하겠거니와, 결딴낸 놈들을 처음부터 장부를 만들지 않았으니 매우 엉성하다. 그러나 한산읍에서 푸짐하게 호궤(犒饋)한 것은 가상하고 감탄할 일이다.
29일
양호순무선봉(兩湖巡撫先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