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위영출진참령관이 첩보합니다.
아래와 같이 첩보합니다.
이 달 21일에 은진현(恩津縣)에서 일본 대대장(大隊長)의 지휘에 근거하여 교장(敎長) 최기성(崔基成)과 김인길(金仁吉)이 휘하의 병정 1백 명을 거느리게 하여 석성(石城)과 보령(保寧) 등지로 파송(派送)하였습니다.
23일 밤 어스름한 새벽에 일본 대대장의 지휘 보고에 따라 삼례(三禮, 參禮)로부터 행군하였는데, 대관(隊官) 윤희영(尹喜永)이 병정 1백 명을 거느리고 먼저 만마관현(萬馬舘峴)에 가서 방수(防守)하고 대관 김진풍(金振豊)이 병정 1백 명을 몸소 통솔하여 차례차례 용두현(龍頭峴)으로 행진하여 방수하면서 적정(賊情)을 탐청(探聽)하였습니다. 그랬더니 23일 오후에 적도(賊徒) 수삼천 명이 전주성(全州城)으로부터 달아나 금구(金溝) 원평(院坪)으로 간다고 하기에, 일본 대대의 군진을 기다렸다가 24일 진시(辰時, 오전 7~9시) 쯤에 함께 전주성에 들어가 주둔하였습니다.
이런 연유를 첩보합니다. 이와 같이 첩보를 올리니 삼가 청하옵건대 살펴서 시행하옵소서. 첩보를 올린 대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상과 같은 첩보를 순무선봉진(巡撫先鋒陣)에 올립니다.
개국 503년 11월
비류(匪類)들이 달아난 것은 듣기에도 매우 놀랍다. 각진(各陣)의 진지(進止)를 상세히 알지 못한 까닭에 지체한 날이 있게 되었다. 내일은 합주(合駐)할 것.
25일 유시(酉時, 오후 5~7시) 삼례참(參禮站)에서
양호순무선봉(兩湖巡撫先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