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소모관이 첩보합니다.
고부(古阜)의 전봉준(全琫準)을 붙잡은 사유를 치보(馳報)한 문장(文狀)의 회제(回題)에 ‘전적(全賊, 전봉준)을 일본 군대에 압이(押移)한 것은 사세가 본디 그럴 수 밖에 없는 일이고 수종(隨從)한 세 놈의 성명을 애초에 현록(懸錄)하지 않고 또 압수(押囚)를 어떻게 했다는 보고가 없으니 자못 세심하게 살피는 도리를 어겼다. 다시 즉시 똑같이 조사하여 보고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괴(巨魁)를 이미 붙잡고 나자 온 군대가 기뻐한 나머지 단지 괴수(魁首)를 서둘러 보고할 줄만 알았고 협박을 받아 따른 자들을 똑같이 보고할 생각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제칙(題飭)을 받들고 보니, 삼가 황송함을 누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세 놈의 성명을 책자로 만들어 치보합니다.
동비(東匪) 중에 최경선(崔京善)과 양해일(梁海一)도 하나의 거괴(巨魁)인데, 본소(本所)가 뒤쫓아 동복(同福) 땅에서 붙잡아서 한꺼번에 즉시 일본 군대에 압송하였습니다. 이런 연유를 첩보합니다.
이와 같이 첩보를 올리니 삼가 청하옵건대 살펴서 시행하옵소서. 첩보를 올린 대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상과 같은 첩보를 양호순무선봉(兩湖巡撫先鋒)에 올립니다.
개국 503년 12월
전보(轉報)하려는 참에 작성된 장부가 올라왔거니와 최경선과 양해일 두 적(賊)을 일본 진영에 압송한 일은 본진(本陣)이 잡아낸 것임을 이미 전해 들었다. 그러나 지금에야 비로소 보고가 들어온 것은 지체되고 늦었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본소가 소집한 소모군(召募軍)이 그 사이에 의로운 일을 해낸 것은 매우 가상하고 감탄할 일이니, 마땅히 전보(轉報)하여 포상 장려할 것임.
19일
양호순무선봉(兩湖巡撫先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