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군 전 경리청우참령관이 첩보합니다.
지난 달 19일 금영 순상(錦營巡相, 충청도관찰사)의 지휘에 따라 대관(隊官) 김명환(金命煥)으로 하여금 병정 반소대를 거느리고 참모관(參謀官) 이윤철(李潤徹), 교장(敎長) 고진룡(高振龍), 금영군관(錦營軍官) 장윤국(張允國)과 함께 연산읍(連山邑)에 출진(出陣)하게 해서, 관동포 수접주(官洞包首接主)인 정판손(鄭判孫), 당해 접주인 김현구(金鉉龜), 노성 대명포 접주(魯城大明包接主)인 박만은(朴萬殷), 전봉준(全琫準)의 수하로 소위 ‘오영도순찰(五營都巡察)’란 이름을 가진 이현석(李鉉石) 등 4인을 초포(剿捕)하여 거리에서 포살(砲殺)하였습니다. 그 나머지 김춘실(金春實), 도정택(都正澤) 등 40명은 모두 귀화했다고 하였기 때문에 효유(曉諭)해서 놓아 보냈습니다. 그 연유를 등보(謄報)하게 되어 그에 대한 연유를 첩보합니다.
이와 같이 첩정하오니, 삼가 청하옵건대 살펴서 시행하옵소서. 첩정한대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상과 같은 첩보를 좌선봉소(左先鋒所)에 올립니다.
개국 503년 12월
전보(轉報)하려는 참에 도달된 공문을 수령함.
12일
양호순무좌선봉(兩湖巡撫左先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