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위영중우참령관이 첩보합니다.
이 달 18일 오시(午時, 오전 11시~오후 1시)쯤 본진(本陣)은 행군하여 30리 떨어진 연당리(蓮塘里)에 이르러 유숙하였고, 그 날 밤 축시(丑時, 오전 1~오전 3시) 쯤 행군하여 해남현(海南縣) 근처에 이르러 적의 동태를 탐문하였더니, ‘비도(匪徒) 수천 명이 성 밖에 둔취(屯聚)해 있다’고 하기 때문에 양 소대를 두 길로 나누어서 진군하였습니다. 비도가 세 차례 포를 쏘기에 아군도 일제히 맞서 포를 쏘면서 전진하였습니다. 적도가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는데, 탄환을 맞고 죽은 자가 8, 9명이 되었고, 사로잡은 모사(謀士) 김유희(金由禧)와 남리역(南里驛)의 대접주(大接主) 김신영(金信榮) 등 두 명은 우선 해남읍에 가두어놓았으며, 빼앗은 군수물자는 장부를 장성해서 첩보합니다.
이와 같이 첩정하오니, 삼가 청하옵건대 살펴서 시행하옵소서. 첩정한 대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상과 같은 첩보를 선봉진에 올립니다.
개국 503년 12월
비류가 그처럼 날뛰고 있다니, 듣기에 몹시 통해(痛駭)할 일이다. 위무(慰撫)하는 일을 먼저 하고 비도를 잡는 일을 뒤에 함으로써 백성들이 안도할 수 있도록 할 것이며, 두 죄인은 장차 수감할 것이니, 장부를 작성해 올리도록 할 것.
20일
양호순무좌선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