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부 공형의 문장 [長興府公兄文]
삼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일은, 삼가 받자온 비밀 감결의 내용처럼 본읍에서 변란을 일으킨 비류(匪類) 수만 명은 이 달 12일에 내려온 대군(大軍)이 포를 쏘아 쫓아냈는데, 이들은 도망하여 본부 남면(南面) 고읍(古邑) 등 협곡(峽谷)에 숨었습니다. 13일에는 비류 만여 명이 장차 대적할 자세를 취하자, 대군이 일제히 나가서 수백 명을 포살(砲殺)하였고, 여당(餘黨)은 자취를 거두어 그림자도 없기 때문에 대군은 강진(康津), 해남(海南) 등지로 내려갔습니다.
같은 달 20일에는 우선봉대장(右先鋒大將) 사또주께서 대군을 거느리고 보성(寶城)으로부터 행진하여 본읍에서 지금 막 좌정하고 경군(京軍)으로 하여금 향병(鄕兵)과 더불어 여얼(餘孼)을 잡아 죽이게 하니, 거의 말끔히 쓸어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소모관(召募官) 사또도 좌정하였습니다. 본부 관사주(官司主, 보성현감)와 책실(冊室)이 피해를 당하여 인부(印符)가 어디에 떨어진지 모르므로 아직까지 찾지 못하니, 송구스러운 마음 견딜 수가 없습니다. 호장(戶長)의 인본(印本)도 잃어버렸습니다.
이에 그와 같은 연유를 문장(文狀)으로 알리옵고, 위의 진술한 건에 대하여 명령을 들으려고 문장을 올리오니, 양호순무좌선봉대장(兩湖巡撫左先鋒大將) 사또주께서는 처분하시기 바랍니다.
개국 503년 12월
임치범(任致範)
주창섭(周昌燮)
두 번이나 소란을 겪은 일에 대해서는 이미 자세히 들은 바이지만, 그들 괴수는 잡지 못하고 졸개만 초토(剿討)한 것은 어찌 족히 숫자로 거론할 수 있겠느냐? 대진(大陣)이 머물러있으니, 응당 차례로 참수할 방법이 있을 것이다. 관가(官家)의 수습하는 일은 서둘러야 되겠고, 인부의 떨어진 곳을 알지 못하니 어찌 송민(悚悶)함을 견딜 수 있겠느냐? 각별히 찾도록 하고, 이후의 상황은 계속 치보(馳報)하도록 할 것.
26일
양호순무좌선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