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 북일면 오산의 변창연 등의 하소연
『춘추(春秋)』에서는 사람이 정의를 보고 마음을 고처 갖는 것을 인정하는 뜻에서 국란을 피해가다가 되돌아온 화원(華元)에 대하여 ‘그가 돌아왔다’라고 적었고, 『강목(綱目)』에서는 사람이 허물을 고친 것을 인정하는 뜻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맹달(孟達)에 대하여 ‘절의를 위해 죽었다’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이 두 사람이 겪은 것은 일에는 같지 않음이 있고, 시대에는 알맞은 것이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옛 일을 끌어서 오늘날을 증명하는 것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저희들은 불행하게도 어지러운 세상에 태어나서 옛 사람에게서 전철(前轍)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망령스런 일입니다.
국가가 불행하여 난역(亂逆)이 발생하자, 흉도(凶徒)가 교묘하게 ‘동학(東學)’이란 이름을 빌어서 한 세상을 속이니, 의리를 멸시하고 순리와 역리에 어두운 무리들이 마치 바람에 쓰러지는 풀 모양 휩쓸려서 고문하고 구타하는 악형(惡刑)을 가지고 한 세상을 괴롭히니, 사람들은 이들을 마치 호랑이 같은 악한 짐승으로 보았습니다. 한 번 그들의 뜻을 거역하면 큰 화가 금방 닥치므로 사람들은 모두 벌벌 떨어 조석을 제대로 보전하지 못하였습니다. 날마다 왕사(王師)가 오기를 마치 가뭄에 비가 오기를 바라듯이 하였지만, 경사(京師)가 워낙 멀어서 조정의 명령이 남쪽 지방에 통하지 않았습니다.
저희들은 모두 남쪽 고을의 한 낱 포의(布衣)이니 비록 죽는다 하더라도 아까울 것이 없지만, 종족(宗族) 수백 명이 결국은 모두 그들 손에 다 죽고야 말 것입니다. 죽는 것은 한 번 죽는 것이니, 종족을 보전하고 죽는 것이 아무런 이익 없이 죽는 것보다 낫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감히 가정과 종족을 보전할 생각을 내어 동도(東徒)와 어울려 접주(接主)란 이름을 얻어서 잔생(殘生)을 편안히 보낼 계획을 하였는데, 동도 중에 또한 서로 모순이 있었으니, 붙어있기도 떨어지기도 둘 다 곤란해서 그저 매어만 있으려는 계략을 했음에 불과했을 뿐이니, 수양[羝羊]이 울타리에 받혀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 날 수도 없는 것처럼 진퇴양난이었습니다.
실은 군문(軍門)에 자수하려고 하였지만, 왕사는 우리를 뒷전에 뒤고 돌보지 않았습니다. 살아서는 세상에 이익이 없고 죽어서는 한갓 누명만을 얻겠으므로 몸을 어루만지며 스스로 슬퍼하니 창자가 하루에 아홉 번은 꼬입니다. 하늘과 땅은 실로 이 마음을 알 것입니다. 지금 휘하의 깃발이 남쪽으로 내려와 역적의 토벌을 급히 행하는 때에 저희들이 만일 삶을 탐한다면 산 속에 숨거나 바닷가 외진 데로 피신하면 한 몸은 화를 면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필경 누(累)가 종족에게 미친다면 종족을 보전하려고 처음 먹었던 뜻이 물거품으로 변하고 말 것인데, 어찌 원통하지 않겠습니까?
온 천하의 땅은 왕의 땅이 아닌 것이 없고, 넓은 천지의 온 국민은 왕의 백성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저희들은 고루 성조(聖朝)의 우로(雨露)를 입었는데, 어찌 감히 우리 천지부모를 버리고 적과 짝을 할 수 있겠습니까? 몸은 비록 여기에 있지만 마음은 곧 천지부모께 가 있습니다. 또한 죄가 있어서 그 죄를 벌한다면 저희들의 죄는 만 번 죽어도 오히려 가벼운 처벌이겠지만, 또한 화원과 맹달 두 사람의 일을 가지고 말한다면 그 일은 어떠하였고, 그 죄는 어떠하였습니까? 대성인의 근엄한 사필(史筆)이 그들의 죄를 용서한 적이 있었으니, 저희들은 감히 옛 사람에 비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만난 일이 그와 가깝고, 또한 저희들의 일은 흉도에게 속임을 당하여 가정과 종족을 보전하고 밖으로는 흉포(凶暴)를 막으려는 심산에 불과했을 뿐이었고, 달리 백성을 확대하는 일은 조금도 한 적이 없습니다. 겨우 잔명을 동도의 독수(毒手)에서 보전해온 지 이미 4,5개월이란 오랜 세월이 되었습니다.
지금 왕장(王章:王法)에 죽는다면 오히려 마음에 달갑게 생각하고 국법(國法)에 처단된다면 동도의 손에 죽는 것과 같겠습니까? 이렇기 때문에 부월(斧鉞)의 벰을 피하지 않고 이에 염치를 무릅쓰고 원통함을 호소하옵니다. 저희들이 한 말이 만일 일호라도 사실이 아닌 것이 염문(廉問:廉探)에서 탄로가 나서 기망죄(欺罔罪)에 처단된다면 장차 지하에서 눈을 감지 못할 것입니다. 헤아려보신 뒤에 저희들이 죄명을 알아서 그 죄의 처벌을 기다리게 하소서. 그리하여 먼저 저희들을 베어 그 나머지를 징계하신다면 국사(國事)가 매우 다행이고 민정(民情)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저희들은 황공한 마음을 견딜 수 없습니다. 명령하여 주옵소서. 순무영 휘하의 처분을 바라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