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진참모관과 별군관이 첩보합니다.
낙안군(樂安郡)에 유주(留駐)한데 대한 연유를 이미 보고드렸거니와, 본군은 요충지대에 처해 있으므로 비류의 소요를 겪을 대로 겪어서 성 밖의 가까운 민가는 이미 소탕된 지경에 이른 것이 수백 호가 됩니다. 그 참혹한 상태는 낱낱이 보고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본 군수의 노련한 솜씨 때문에 성 안의 이민(吏民)은 당초부터 사도(邪道)에 물들지 않았고, 방수에 성의를 다해 끝내 외로운 성을 지켰으며, 또 순천(順天), 광양(光陽), 흥양(興陽) 세 읍을 겸임하여 각각 그 지방으로 하여금 각별히 성을 지키는 방비를 설치하게 하였고, 붙잡은 비류가 몇 백 명이 되었는데, 혹은 해당 법률을 실시하기도 하고, 혹은 귀화시키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낙안군이》 꽤 편안해졌습니다.
본군 경내의 거물급 괴수인 강사원(姜士元), 안귀복(安貴福), 이수희(李秀希) 등 세 놈은 개남(介南, 金開男)의 적이 청주(淸州)를 가서 범할 때에 ‘선봉진(先鋒陣)’이라 칭하며 비당(匪黨)을 이끌고 수창(首倡)하여 앞에 가서 소요를 일으킨 놈입니다. 또한 조종하여 각별히 그를 잡아서 효수하여 민중을 경각시키니, 이웃 여러 군이 따라서 조금 안정되었습니다.
본 군수는 마음을 기울여 나라에 보답하기를 도모하였고, 당해 공형도 기회를 만들어 수응하였으니, 이것은 바로 열읍에 드물게 있는 일입니다. 그 전후실적을 상고해서 전보(轉報)하여 포상하는 것이 사리에 부합할 듯합니다.
본 군수가 호궤(犒饋)하기 위하여 소 한 척(隻), 술 두 동이를 군진 앞으로 보내왔기 때문에 즉시 각 대오에 나누어 주어 과세(過歲)할 준비물로 삼게 하였고, 또 전문(錢文) 35냥과 짚신 3죽으로 신행(贐行)의 수용을 도왔기 때문에 또한 군진 중에 나누어 주었고, 3일을 유숙한 뒤에 출발하여 흥양 등지로 향하였습니다. 이후 상황은 계속 치보할 계획이므로 그에 대한 연유를 아울러 첩보합니다.
이와 같이 첩정하오니, 삼가 청하옵건대 살펴서 시행하옵소서. 첩정한 대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상과 같은 첩보를 양호순무좌선봉께 올립니다.
별군관(別軍官) 유(柳)
이(李)
본군의 적의한 조처로 이웃 지경이 그를 힘입어 편안하게 되었고, 넉넉히 준비한 호궤에서는 한 군진의 감동한 기색을 볼 수 있었겠다. 전후실적은 응당 전보하도록 할 것임.
초7일
양호순무좌선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