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 전라도 삼례도찰방이 첩보합니다.
방금 도달된 대진(大陣)의 감결 내용에 ‘본참(本站)에 주소를 두고 도망 중에 있는 비류의 괴수인 윤덕민(尹德民)의 집에서 찾아낸 전곡(錢穀)과 전답(田畓)에 대해 기록된 책자를 소상히 조사하여 일일이 구별해서 치보하되 조금도 사실과 어긋남이 없도록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윤덕민의 전후 정황을 소상히 조사하였더니, 그는 영남(嶺南) 미조항첨사(彌助項僉使)로서 지난 계사년(癸巳年, 1893) 가을에 부임했다가 갑오년(甲午年) 여름 사이에 체직되어 돌아왔는데, 마침 비류의 소요를 만나 가산을 탕진하고 충청도 임천(林川)으로 피접(避接)갔습니다. 이상과 같은 일은 이웃 마을 주민들이 고한 바와 동일합니다.
각항 문책(文冊)은 대진(大陣)이 행군할 때에 병정들이 분명히 윤덕민의 홀로된 형수(兄嫂) □□에서 찾아냈다 하오며, 전답은 그 아버지의 생시에 분깃(分襟) 받은 이후 척매(斥賣)한 곳이 많고 또는 옮겨서 산 곳도 있는데, 수십 년 이래의 도세(賭稅)에 관한 책자까지 아울러 한데 포개서 축(軸)으로 만들었는데, 현란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탐문하여 뽑아 고준(考準)해서 책으로 만들어 올리느라 많은 날을 소비하였으므로 송구함을 견디지 못하겠사오며, 전곡의 실수는 주고받은 사람들이 모두 흩어져 없으므로 물을 길이 없으니, 각별히 조사해 찾아낼 계획입니다. 이에 그에 대한 연유를 첩보합니다.
이와 같이 첩정하오니, 삼가 청하옵건대 살펴서 시행하옵소서. 첩정한 대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상과 같은 첩보를 양호순무좌선봉진에 올립니다.
개국 504년 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