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무사에게 올리는 편지[上巡撫使書]
청나라 사람이 남긴 탄환이 천안과 공주의 2개 읍에 몇 만개가 있다고 하나 애초에 모양이 《우리나라의 총에》 맞지 않아 있는 것이 없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할 만합니다. 죽산(竹山)수령이 얻은 5~6상자의 《탄환은》 모슬총에 사용하였습니다. 통위영(統衛營)은 늘 70~80개를 사용했으나 경리청(經理廳)은 10여개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가 없이 일본인이 준 모양이 맞지 않은 탄환을 나누어 주었을 뿐입니다.
지금 날씨를 보면 매우 추워야 하나 봄날처럼 따뜻하고 때때로 비가 옵니다. 이것이 비록 어긋나는 날씨이더라도 얇게 입은 병사들에게 당장은 매우 다행스럽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솜옷을 입은 사람은 몇 명에 지나지 않은데, 혹시 하루라도 춥게 된다면 추위에 얼을 뿐만 아니라 당장에 병이 나는 것은 필연적인 형세입니다. 4만여 금이 있은 뒤에야 준비해서 쓸 수 있기 때문에 순사(巡使)와 상의하였으나 우선 마련할 길이 없을 뿐만 아니라 설령 돈을 손에 넣는다고 해도 옷을 만들 방도가 전혀 없습니다. 들어올 《돈을》 대충 헤아려서 사람마다 바느질품을 합해 20냥으로 정해서 3영(營)을 모두 합하면 거의 4만 냥이 넘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지금 군심(軍心, 병사들의 심정)을 보면 원망하는 소리가 많습니다. 만약 서울에서 마련하여 줄 방도가 있다면 헤아려서 각 병사들의 집에 내어 주어 만들어 오게 한다면 바느질품이 들지 않는 데다 친속(親屬)으로 하여금 가져오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드리니 헤아려서 주선해주시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1만금의 비용을 줄일 수 있는데다가 빨리 만들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말씀을 드릴 뿐입니다.
이번 11일에 경리청(經理廳)의 병사들이 논공(論功)을 적어 보고할 때에 억울한 점이 있다고 하여 무리를 모아 강을 건너 올라가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의 모습은 난리보다 심하다고 할 만하였습니다. 비록 순상(巡相, 관찰사)과 제가 함께 나가 바로 타일러서 돌아오게 했으나 그 당시의 모습으로는 장관(將官, 장수)를 쏘아 죽이는 일이 있더라도 누가 금지할 수가 있겠습니까? 평소에 훈련되지 않고 신실하지 못한 병사인데다가 소인의 나약함 때문에 이런 변고가 있었으나 그 우두머리를 조사하지 못하고 일상적인 일인 것처럼 하였으나 직분을 수행하지 못한 죄는 진실로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나 적이 앞에 있는데 이런 행동이 있었으니, 이와 같은 군심(軍心)으로 어떻게 나가 싸우겠습니까? 비록 바로 여러 차례 와서 날마다 잘못을 빌었으나, 무뢰한 습속이 진실로 이와 같고, 또 단서가 없이 통정(統丁)과 따지려고 하니 안에서 허물이 생길까 염려스럽습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근심스럽고 송구스럽습니다.
부전(符箋, 의견을 적어 덧붙인 쪽지)
비류(匪類)가 4차례 패악한 편지를 《보내왔으나》 《일일히》 들어 보고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함께 올려 보내니 보시면 아시리라 여겨집니다. 그러나 거만하고 패악한 말에 나도 모르게 머리털이 떨리고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처음 편지에서 《폐단을》 제거하고 《조정의 권귀(權貴)를》 없앤다는 몇 마디 말을 적어 보냈기 때문에 이것을 베껴 올리나 의정부에 전하여 보일 것이 못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