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8일 순무사에게 올리는 편지[上巡撫使書 初八日]
이 성(省, 城)에 들어온 뒤에 여러 번 편지를 드렸는데, 아직도 답장을 받지 못했습니다. 비록 뒷길이 열렸다는 소식이 없더라도 최근에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 많기 때문에 더욱 걱정스럽습니다. 호서에서 점막(店幕)을 척후(斥候)로 삼고 상민(商民)을 돌려보냈다고 들은 듯한데, 돌아가는 것이 지체되는 것도 여기에서 연유하는 듯하여 매우 울적할 뿐입니다.
연이어 도내 여러 읍들의 정형을 탐문해보니, 비류가 모두 흩어져서 모인 곳이 1군데도 없으나 진정되지 않았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인심은 호서와 달라서 비록 당장은 흩어졌으나 모두 의구심을 품고 관망하며 주저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호남은 임금의 교화를 입지 않아 《지난》 5월 이후에 더욱 심해졌습니다. 그래서 읍마다 도륙을 한 뒤에야 가라앉게 할 수가 있으나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고 조정의 덕의(德義)를 펴서 안정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끝내 잘못을 고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경병(京兵)이 지나가고 이르지 않은 읍에서 오히려 기포(起包)한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호남사람의 엉터리 말을 비록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해도 이것으로 헤아려보면 인심이 헛소문에 들떠 일어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지금 장성(長城)에 머문 지가 8일이 되었고 병사를 각처에 보냈습니다. 또 일본인이 인솔하여 갔고, 현재 인솔한 것이 없습니다. 사창(社倉)에 주둔하고 있는 모리오 마사이치(森尾雅一)가 조만간에 함께 주선하기로 약속을 했으나 아직도 여기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내에서 소란을 일으킨 각 접주들을 결과(結果, 형벌을 시행하는 것)하거나 《사정을》 참작하여 풀어주기도 하였으나, 본 읍의 수령이 아직도 부임을 하지 않아 이것이 근심스럽습니다. 전봉준·김개남(金介男)·손덕수(孫德守)·송문수(宋文守)·이장태(李長太)는 모두 유명한 거괴로 모두 잡았고, 송(宋, 송문수)과 이(李, 이장태) 2명의 적은 아직 적어서 보고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법망에서 빠진 나머지 적은 모두 백성의 힘으로 잡을 수가 있으나 《백성의》 심지(心志)가 호중(湖中, 충청도)과 같지 않아서 관아에서 추격하여 잡는 것 이외에 찾아내어 잡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최경선(崔敬先)은 화순(和順)에서 체포했다고 하는데,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손화중(孫化中)은 고창(高敞)·무장(茂長)·영암(靈岩)의 3개 읍으로 도망을 갔으리라 여겨지나 확실하게 알 수 없는 것은 실제로 인심이 겁을 먹고 관망을 하기 때문입니다. 무장(茂長)에서 잡은 각 괴수를 취초한 기록을 베껴서 올려 보내는데, 아직 공보(公報, 관아의 보고)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두황(李斗璜)이 우선봉(右先鋒)에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아직 알려주시는 문서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일이 매우 합당하나 어찌 특별히 좌우에 이름을 둘 필요가 있겠습니까? 제가 전후에 《걸쳐》 효과가 없고 오랫동안 건강하지 못한 것은 이미 알고 계시고, 또 여러 차례 말씀을 드렸습니다. 편한 대로 변통하면 일이 용이할 듯 하니 아무쪼록 주선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편한 대로 변통하여 공사(公私)간에 합당하게 되도록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완성(完成, 전주성)에 도착을 한 지가 10일이 지났으나 답장을 받지 못했고, 단지 지난 27~28일에 보낸 보고에 대한 처분을 몇 차례 받았습니다. 또한 집에서 오는 편지를 받지 못해 매우 울적합니다.
지금 벽사승(碧沙丞, 碧沙驛의 丞)이 와서 4일에 역(驛)이 비도(匪徒)에게 소실되었고, 장흥도 성이 함락되어 수령이 잡히는 지경이 되어 급히 구원을 요청하러 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것은 사적인 부탁이 아니고 읍의 역이 함락을 당하고 읍의 수령이 잡혔다면 밤을 가리지 않고 가서 구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지금 병사가 각처에 파견되어 있는데다가 일본인이 관할하고 있어 병사를 뽑아 보내려고 해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으니, 실제로 지연된 책임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또 우도(右道)의 가까운 곳의 일을 아직도 마무리하지 못해 도처에서 변고를 《알리는》 보고가 늘 이처럼 많아 한탄스럽습니다. 대개 왼쪽 연로의 각 읍에서는 아직도 군대의 위엄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해괴한 일이 있습니다. 만약 백성의 심지(心志)를 안정시키려고 한다면 읍마다 순찰을 하며 한편으로는 위로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죄를 처벌한 뒤에야 가닥이 잡힐 방도가 있을 듯합니다. 만약 군대를 철수하여 바로 돌아간다면 철수하는 다음날에 비도의 걱정을 장차 어떻게 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