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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선봉진상순무사서(부잡기)
  • 기사명
    갑오년 11월 8일 첩보[甲午十一月初八日]

    원문보기 원문/국역

  • 날짜
    음력 1894년 11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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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 11월 8일 첩보[甲午十一月初八日]

첩보할 일은, 각 영(營)과 각 소대(小隊)의 일행을 인솔하여 가는 비용을 2차에 걸쳐 30일치를 받았으나 지금 날짜를 계산하면 거의 남은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첩보를 하니 사또께서 군수(軍需)의 궁박한 《사정을》 헤아려서 며칠정도의 비용을 더 보내주시기를 바랍니다.

순무영(巡撫營)

양호순무선봉(兩湖巡撫先鋒)

남쪽에 있는 은진·논산의 적과 전봉준(全琫準)의 무리가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 황산(黃山)에서 호응하여 따르지 않는 자들을 약탈하고 호남의 김개남(金介南)을 불러 모아 후원한다고 합니다. 승세를 타서 회오리바람처럼 달려온다면 그 기세가 반드시 대나무가 쪼개지는 듯할 것입니다. 길은 효포(孝浦)를 향해가다 효포 30리에서 판치(板峙)를 넘어 경천점(敬川店) 30리에 도달했는데, 논산까지는 30리길이고 영하(營下)에서는 70리가 됩니다. 동남쪽의 갑사(甲寺)에도 걱정거리가 있는데, 길이 좁고 옆에 험난한 데가 많아 복병(伏兵)이 있을 만합니다. 또한 흩어진 적의 소굴인데다가 더욱이 대교(大橋)의 흩어진 적들이 다시 연기(燕岐)의 세거리(細巨里)에 모여서 전적(全賊, 전봉준)에게 나아갈 계획인데 반드시 갑사로 향할 것입니다. 먼저 관군으로 그 소굴을 정탐하여 나아갈 길을 차단하고 교도병(敎導兵)과 합세한다면 적의 형세는 반드시 나눠 질 것입니다. 힘이 분산되면 저들은 서남 방향을 따라 바로 완영(完營, 전라 감영)으로 향하여 갈 것이고,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니 전적(全賊, 전봉준)의 머리를 휘하(麾下, 순무사를 지칭)에 바칠 수 있을 것입니다. 길은 장기대(將旗臺)에서 외약천진(外若串津)을 거쳐 왕촌(旺村)·청인(靑印)·대장(大莊)을 내려가면 갑사까지 30리입니다.
서남쪽에 이인(利仁)의 김의권(金義權)이 새와 짐승처럼 흩어졌다가 이인에 다시 모여 호응해서 따르지 않는 배가(裵哥)를 죽였기 때문에 주민이 비록 가고 싶지 않았으나 위협에 두려워서 감히 따라가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지속되면 그 기세가 반드시 대단해져서 무고한 사람들이 많이 죽는 것도 참담할 것입니다. 길은 우금치를 넘어 태봉(胎峰) 아래를 거쳐 용호동점(龍虎洞店)을 내려갈 것입니다. 영하(營下)에서 20리 거리입니다. 반송(盤松)과 건평(乾坪)의 적은 이곳에 도달하면 수색하는 것도 용이합니다. 2곳 모두 10리 거리에 있습니다.
서쪽 정산(定山)의 미륵당(彌勒堂)에 근심거리가 있습니다. 김기창(金基昌)이 아들로 하여금 통문을 내게 하여 수천 명을 모았다고 하는데, 그 기세가 늘어나게 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들이 대비가 없는 《틈에》 공격한다면 일은 절반만 해도 그 공은 갑절이나 될 것입니다. 길은 가가진(加加津)을 거쳐 공수원점(公水源店)을 지날 것인데, 영하(營下)에서 20리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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