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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스물셋 10월 22일 [其二十三 二十二日]

보고하는 일입니다. 출진(出陣)한 장위영 부영관(副領官) 죽산도호부사 겸 죽산진토포사(竹山都護府使 兼竹山鎭討捕使) 이두황(李斗璜)이 보고한 내용에, “이달 18일에 연기(燕岐)의 봉암동(鳳巖洞)에 도착하여 상부의 결정에 따라 전진하기 위해 금영에 보고한 사유는 이미 급히 달려가 보고하였거니와, 이달 20일 묘시(卯時, 오전 5∼7시)에 도착한 청주 병영(淸州兵營)의 감결(甘結)에, ‘목천의 세성산(細城山)에 진을 치고 모여 있는 비류(匪類)들을 빨리 토벌하라’고 하였기 때문에 그날 사시(巳時, 오전 9∼11시) 경에 30리를 행군하여 청주 송정리(松亭里)에 이르러 주둔하고 묵었으며 이튿날인 21일 묘시 경에 행군하여 곧바로 목천의 세성산 아래에 도착하였습니다.

이어서 지형과 비류들의 동태를 상세히 살펴보니, 세성산은 세 면이 가파른 절벽이고 한쪽 면이 다소 평편합니다. 보루와 참호는 극히 견고하고 넓으며 깃발이 빽빽이 늘어섰고 들녘에는 포성이 요란하였습니다. 부대를 동북쪽 토산(土山) 위에다 잠시 멈추고 병사를 쉬게 한 다음 차례로 출발시켜 한 개 소대는 세성산 동남쪽 기슭에서부터 총포를 쏘면서 쳐 올라가게 했고, 두 개 소대는 세성산 북쪽 기슭에 매복시켰으며, 한 개 소대는 호응케 하기 위해 토산 위에 머물게 하였습니다.

적(賊)이 반 식경을 버티다가 우리 군대의 공격을 받아 성을 버리고 서쪽으로 달아났고, 이때에 우리 군대는 동남쪽 기슭부터 쳐 올라가서는 먼저 성지(城池)를 점령하였습니다. 한편 북쪽 기슭에서 매복하고 있던 소대는 도망치는 ≪동학농민군을≫쫓아 북쪽으로 수 십 리를 추격하여 사살하거나 사로잡는 등 크게 이겼으니 이때가 그날 신시 경이었습니다. 노획물은 차례대로 헤아린 뒤에 책자로 만들어 보고할 생각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진격해서 비류들을 토벌하여 크게 전승을 얻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니 매우 통쾌합니다. 이에 보고하여야 마땅하나 단지 병영에서 관문으로 시행해야 하므로 시간이 지체됨을 면치 못했다는 뜻으로 제송(題送)하였습니다. 음식물을 베풀어 군사를 위로하는 일은 먼저 본 읍으로부터 넉넉하게 지공(支供)을 준비한 뒤인지라 아무쪼록 사용한 공곡(公穀)과 공전(公錢)을 해당 감영에게 보고하도록 감결을 발송하였습니다. 참모관(參謀官) 정도영(鄭道永)과 별군관(別軍官) 이필영(李弼榮) 그리고 이종진(李宗珍) 및 병정 5명은 위로차 보냈습니다. 그리고 죽이거나 사로잡은 ≪동학농민군의≫숫자는 다시 보고를 기다렸다가 보고할 생각인 연유의 일입니다.

제(題): 마땅히 비밀로 명령하라.

통위영(統衛營) 장위영(壯衛營) 경리청(經理廳)에도 그대로 베껴서 보고함.

주석
목천의 세성산(細城山) 현재는 천안군 성남면 화성리에 있는 산으로, 세성산 정상에는 병풍암이라 부르는 둥근 바위가 있는데 농민군의 지휘부가 자리잡은 곳이라 한다. 이곳은 공주 감영과 청주병영의 중간에 있어서 북접 농민군들이 일본군과 관군의 진로를 차단하려는 작전에 따라 웅거하였다.
제송(題送) 상급 관아에서 어떤 취지나 지령을 공문서에 적어서 하급 관아로 보내는 것을 말한다.
지공(支供) 음식을 이바지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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