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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스물여섯 10월 25일 [其二十六 二十五日]

보고하는 일입니다. 별군관 겸 경리청부령관(別軍官 兼經理廳副領官) 안성군수(安城郡守) 홍운섭(洪運燮)의 보고에, “이달 23일 인시 경에 충청도 관찰사의 통지에 따라 군수가 후원군(後援軍) 참령관(參領官) 구상조(具相祖), 참모관(參謀官) 이상덕(李相德)·이윤철(李潤徹)·신효식(申孝湜)·황승억(黃昇億), 대관(隊官) 조병완(曺秉完)·이상덕(李相德) 및 교장(敎長) 김홍엽(金弘燁)·이봉춘(李鳳春)·이장혁(李章爀)·우기준(禹基㻐)과 함께 2개 소대의 병사를 거느리고 진영을 나와 공주목(公州牧)에서 남쪽으로 10리 거리의 효포(孝浦)를 막아 지키면서 사방으로 정탐군(偵探軍)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경(二更, 오후 9∼11시)이 지나 보고하기를, ‘호남의 전봉준(全琫準)이 동도(東徒) 4만 명을 이끌고 남쪽 30리 거리에 있는 경천(敬川)을 겁략하고는 장차 공주목으로 향할 것’이라고 큰소리 쳤다고 하고, 옥천포(沃川包) 동도 수만 명이 동쪽 30리 거리에 있는 대교(大橋, 현 도교리)에 진을 치고 모여 있으면서 전봉준과 합세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약한 군사로는 한 곳도 방어하기가 극히 어려운데다가 효포는 배와 등의 모양을 하고 있어 양쪽에서 적을 맞는 지세(地勢)인지라 오래 주둔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닭이 울 때를 기다렸다가 즉시 출발하여 25리를 후퇴하고 수촌(壽村)에 이르러 아침밥을 먹었습니다. 그런 다음 대교의 뒷길을 따라 20리를 나가 멀리서 ≪저들을≫관망하니 골짝 뒤 작은 능선에 숲을 의지하여 진을 치고 모인 자가 수천 명이며, 넓은 들판에 빙 둘러 꽂힌 깃발로 보아 모두 합치면 수만 명의 무리가 됩니다. 그래서 몰래 그들의 뒤편을 따라 숲을 의지하고 있는 적을 먼저 습격하였습니다. 얼마 안 있어 그들이 포격을 받고는 산에서 내려와 들판에 있는 적들 쪽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우리 군사가 그들의 능선을 빼앗고 상호간에 총포를 쏘아대니 서로의 간격은 반 식경 거리였습니다.

우리 군사가 20여 명을 사살하고 6명을 생포하니 그들은 차츰 흩어져 산으로 기어올라 고개를 넘어 달아났습니다. 이에 45리를 진격하여 반나절을 접전하니 날은 저물고 군병(軍兵)들도 지쳐서 만일 모조리 잡으려고 한다면 진퇴양난에 빠질 수 있어 방시문을 내걸어 백성들을 안정시키고≪동학농민군이≫버리고 간 약간의 물건을 거두어 모으고는 즉시 회군하였습니다. 다시 수촌으로 오는 도중에 지시를 받고 공주목으로 돌아와 머물렀습니다. 생포한 여섯 놈은 효수하여 여러 사람의 경계로 삼기 위해 바칠 것이며 노획한 군수물은 책을 만들어 순무사께 올립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보내온 책을 다시 수정하여 올려 보내며 해당 영관이 졸지에 적들을 만나 적은 군사로써 많은 수를 대적하였는데도 그들을 생포하고 사살한 수효가 적지 않습니다. 그 장관(將官)의 용감함과 병졸들의 목숨 바쳐 싸운 일은 매우 가상한 일입니다.

제(題): 듣자니 매우 가상하고 칭찬할 만하다. 노획한 공을 아뢰어 더욱 사기를 분발시켜라.

통위영 장위영 경리청 총어영(摠禦營)에도 그대로 베껴서 보고함.

주석
옥천포(沃川包) (包) : 동학의 전도(傳道)를 위한 조직의 한 단위. 또는 그 조직이 있는 곳. 포의 책임자를 포주(包主)라 하고, 그 하위 조직을 접(接)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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