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셋 10월 27일 [其三十三 二十七日]
보고하는 일입니다. 바로 도착한 출진한 장위영 부영관 죽산도호부사 겸 죽산진토포사 이두황의 보고 안에, “세성산의 비적(匪賊)으로 북접(北接)의 우두머리인 김복용(金福用)의 처결은 회제(回題)를 기다렸다가 시행하려고 보고를 하였더니 곧바로 도착한 회제 안에, ‘즉시 효시하여 대중에게 경계로 삼아라’ 하였기 때문에 그날 처단하였습니다.
이른바 적진(賊陣)의 중군(中軍) 김영호(金永祜)와 화포대장(火砲大將) 원전옥(元全玉) 및 수종(隨從)한 세 놈은 다른 길로 염탐하여 사로잡았는데, 소모관(召募官) 정기봉(鄭基鳳)이 잡아 보내온 두 놈과 천안군에서 압송해 온 열네 놈과 아울러 한꺼번에 목을 벤 뒤에 그들의 성명을 책으로 만들어 보고하며, 제사(題辭)에 따라 달려가 지원하기 위해 당일로 공주를 향해 출발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두머리 이외는 상세한 조사를 거치지 않고 즉시 목을 베었으니 처결함이 지나쳤다는 뜻을 제송(題送)하여 신칙하였으며 목을 벤 동도의 성명을 적어온 책을 올려 보낸 연유의 일입니다.
제(題): 장계로 아뢸 것이다. 도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