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일곱 11월 16일 [其六十七 十六日]
보고하는 일입니다. 방금 접수한 소모관(召募官) 천안군수(天安郡守) 김병숙(金炳塾)의 보고 내용에, “본도의 감영에서 후록(後錄)하여 열거한 가운데 신사(紳士, 벼슬아치 출신) 중에 좋은 생각을 내어 비류를 섬멸하는 계책을 올리는 자가 있으면 재능에 따라서 수용하여 규정을 넘어 권면하고 시상한다 하였습니다. 지난 번 본군에 비류가 창궐하는 때에 민심이 분잡하고 사기(士氣)가 막혔었습니다. 이런 때를 당하여 두서너 현량(賢良)들이 일어났으니 그 공효(功效)가 심히 컸습니다.
전 도사 홍유주(洪有周)는 연전에 성균관 시험에서 사예(司藝)로 천거를 받았고 경술 문학(經術文學)과 청백염근(淸白廉謹)한다하여 초년부터 충청남도에서 중망(重望)을 짊어져서 이미 조정에서 등용하였습니다. 진사 박영민(朴永民)은 문학이 일찍부터 현저하였고 재주와 슬기가 모두 뛰어나 사우(士友)들 사이에 소문이 자자하고 경제(經濟)에 관한 일을 꿰뚫고 있습니다. 유학 박제면(朴齊冕)·이주혁(李周赫)은 기국이 깊고 넓으며 재식(才識)이 뛰어납니다. 이 네 사람은 본 읍에 같이 살면서 서로 권려하고 기강을 붙들고 세우니 난당(亂黨)들이 감히 침범하지 못하였고 향리에서 촉망을 받고 있어 실로 선비의 모범이며 한 주(州)의 의표가 됩니다.
지금 우리 군대가 가까이 임하니 이미 은혜와 위엄을 떨쳐 사악한 무리들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렇지만 민심은 많이들 흩어졌으니 이를 진압하고 바로 잡는 데에는 훌륭한 선비를 나오게 하고 사림을 권면하는 것만 같은 것이 없습니다. 이런 인망이 있는 사람들은 장려해 발탁하고 권면하는 일이 없어서는 안 되는 바, 삼가 순무영의 공문에 따라 이에 사실에 의거하여 베껴서 보고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이렇게 소란스러운 때에 네 사람이 홀로 의리를 지키면서 의연히 흔들리지 않고 한 지경 내의 본보기로 실로 사림의 표준이 됩니다. 해당 읍의 수령의 보고에 의거하여 청컨대 관계(官階)의 차례를 밟지 않고 장려하고 발탁하여 민심을 진압하게 하는 것이 여론에 합당할 것 같기 때문에 이에 문첩으로 보고하오니 삼가 처분을 기다립니다.
제(題): 마땅히 공주부에 보고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