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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예순여덟 [其六十八]

보고하는 일입니다. 연속해서 비류의 정형을 정탐하니 노성현에 진을 치고 있다 하므로 공격하기 위해 장위영 부영관 이두황에게 명하여 이인에서 출발하고, 경리청 2개 소대에게 명하여 공주부에서 머물러 주둔하게 하였으며, 선봉은 통위영 병정 2개 소대를 거느리고 일본 대위와 병정과 함께 오실로(梧室路)를 향하여 출발하게 하였습니다. 공주부 남쪽 30리 용수막에 이르러 회동하여 유숙하고 길을 나누어 노성에 진을 치고 있는 적을 합세하여 공격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선봉장은 다만 경리청 병정 2개 소대만 거느리고 공주부로 돌아와 주둔하여 별 탈 없이 밤을 묵었습니다.

같은 날 묘시에 도착한 공주영장 이기동(李基東)의 보고 내용에, “경천(敬川)으로 전진한 사유는 어제 이미 보고하였거니와, 어제 해시 경에 일본군 대위 진영에서 통지하기를, ‘우리 부대는 자시에 즉각 출동하여 행진할 것이니 당신네 부대도 통위영 병정과 함께 경천에서 합류하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시 경에 즉시 경천으로 출발하였고 일본군 대위의 부대가 향하는 곳을 알 수 없어 동이 트기를 기다리면서 사방을 관망하였으나 끝내 보이지 않았고 노성읍에서 포성이 나기에 즉시 달려갔습니다. 거기서 일본군 대위를 만났는데 그 사태의 단서를 물어보니 봉화대를 따라 가다가 그대로 이 읍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총포로 동도 10여 명을 쏘아죽이니 비류 만여 명은 행군해온 부대를 두려워하여 그대로 논산으로 달아났습니다. 그리하여 일본군 대위와 장위진은 합류하여 승승장구하였습니다.

영장(營將)이 즉시 부대를 나누어 되돌아가는 길에 노성의 누동면(樓洞面) 칠동(漆洞)으로 들어가 비류들이 쌓아놓은 쌀 51 석을 압류하여 동민들을 시켜 다음날 운반해 오도록 명령하고 다시 경천으로 향하였습니다. 이때 길에서 청산(靑山)에서 돌아오는 일본군 대위와 병사 100여 명을 만나 그들로 하여금 즉시 논산으로 전진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경천 비류의 도회소(都會所)로 진입하여 다시 쌓아둔 쌀 127석을 얻고 동민들을 시켜 다음날 운반해 오도록 명령하였습니다. 그리고 즉시 도진영(都鎭營)으로 가는 길에 느닷없이 창을 든 비류를 만나 4명을 포살하였습니다. 그런데 병사들이 지치고 날도 어두워져서 도진영으로 가지 못하고 본 주(州)의 진두면(辰頭面) 봉양동(鳳陽洞)에서 유숙하고 다음날에 진으로 돌아갈 계획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위에서 말한 쌀 187석을 금영에 운송하게 하여 군수(軍需)로 보충하도록 하였고 선봉진도 앞으로 수습하는 대로 출발하여 논산으로 뒤쫓아 간 뒤에 상황을 차례로 급히 보고할 계획입니다.

제(題)

주석
도진영(都鎭營) 총지휘를 맡은 장위영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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