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 12월 초 5일 [其九十 初五日]
보고하는 일입니다. 각 부대를 거느리고 별 탈 없이 장성부에서 밤을 묵었습니다. 이때 정읍의 비류 거괴인 손덕수(孫德秀)는 역적 손화중의 집안으로 읍민들이 붙잡아 바쳤는데, 용대기(龍大旗) 1면(面) 및 수기(手旗) 1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손화중과 곤장수(棍杖手) 정정칠(丁正七) 및 장성부 아곡(鵞谷)에서 잡아들인 거괴 이춘학(李春學) 3놈을 어제 오시 경에 군민(軍民)을 장대(將臺)에 크게 모여 놓고 즉각 목을 베어 백성들에게 경계로 삼았습니다.
어제 신시 경에 대관 신창희가 담양부에서 선봉진으로 돌아왔는데, 담양의 접주 2놈을 잡아왔습니다만 일본군 진영에서 잡아 가두는 바람에 아직 문초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날 오시 경에 일본군 대위의 통지에 따라 병정 20명을 흥덕현으로, 병정 30명을 일본 병사 20명과 함께 고창현으로 파송하였습니다. 두 부대의 남은 병정은 영관 장용진, 대관 신창희·오창성이 거느려서 일본군 대위 모리오 가이찌(森尾雅一)와 함께 영광(靈光)의 사창(社倉) 50리 지점으로 출발하게 하였습니다. 선봉진에서 거느린 순무를 담당하는 관원 및 병정 30명은 그대로 장성읍에 머무른 연유의 일입니다.
제(題): 도착하였거니와 각처로 병사를 파송한 뒤의 상황을 자세히 살펴 보고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