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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아흔둘 12월 초 9일 [其九十二 初九日]

보고하는 일입니다. 초 5일부터 초 8일까지 장성부에 주둔하여 별 탈 없이 밤을 묵었습니다.

방금 도착한 벽사 찰방(碧沙察訪)의 보고에, “동도 1,000여 명이 장흥부의 사창(社倉) 등지로 모여들더니 이달 초 4일 진시 경에 이르러 여기 벽사역(碧沙驛)으로 곧장 쳐들어와 관아와 여염집을 다 불질러 태워버리고 장흥부(長興府)로 향하니 그곳에 살던 백성들은 흩어져 우관(郵官)과 같은 능력으로는 대비책이 없어서 형세상 부득이 찰방인 제가 병영으로 달려가서 ≪동학농민군을≫토벌할 방책을 사유를 갖추어 대면하여 청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병영의 사또가 분부하기를, ‘비류들이 병영문 가까이까지 닥쳤는데 방어하는 군사를 보내기가 몹시 어려우니 지금 이런 사유를 초토영(招討營)에 가서 보고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초토영에 가서 역시 답답함을 고하니 분부하기를, ‘나주에서 군병을 출발시킬 생각이니 역시 이런 사유를 가지고 주력부대에 가서 여쭈어라’고 하기에 찰방인 제가 이미 면대하여 품고하였거니와, 비류들이 장흥 성안에 침입하여 점거하고 부사(府使)를 곤박(困迫)하니 그의 목숨이 언제 끊어질지 모릅니다. 그리고 비류들이 함부로 날뛰며 겁략하니 역(驛)에 사는 백성들이 피하고 사방으로 흩어져서 텅 비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찌 한심스럽지 않겠습니까? 월하(越下)의 군병이 아니면 그들을 과감하게 섬멸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걱정스럽고 절박한 사정을 외람되이 보고하니 특별히 처분을 내리어 경군(京軍) 몇 백 명을 출동하여 읍과 역에 놀라서 흩어진 백성들로 하여금 전처럼 안도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이어서 도착한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의 공문에, “비류 10,000여 명이 본영에서 30리 되는 장흥 등지에 진을 치고 모여 있다가 이달 초 4일에 벽사역을 불질러 태워버리더니, 초 5일 새벽에는 장흥부를 함락하고 부사를 잡아 마구 때려 머리가 다쳤는데 생사를 가늠할 수 없으며 공형을 포살하고 가호(家戶)를 분탕하고 남녀를 닥치는 대로 죽이니 유혈이 도랑을 이루고 울부짖는 소리와 달아나 숨는 모양을 무어라 형언할 수 없습니다.

또한 좌측 연안에서 탐문한 보초(步哨)에게 들으니 각처의 비류 수만 명이 현재 병영과 40리 떨어진 장흥 사창의 저자에 진을 치고, 장흥을 함락한 무리들과 합세하여 곧장 본 병영을 도륙하겠다고 흉악한 말을 마구 지껄였습니다. 방어와 수비를 아무리 엄히 단속하더라도 군병(軍兵)이 모두 민간의 장정이고 더구나 중과부적임을 생각하면 몸을 뒤척이며 자나 깨나 노심초사하지만 방어할 재간이 없어 성을 잃는 환란이 조석으로 닥쳐왔습니다”라고 하는바, 병영과 역(驛)에서 알리는 보고가 이렇게 급박하기 때문에 각 소대를 거느리고 진시 경에 나주를 향하여 출발하였으며 여산(礪山)에서 군대를 위로하기 위해 보낸 물품은 책을 만들어 순무사에게 올리는 연유의 일입니다.

제(題): 상황을 계속해서 달려와 보고하라.

주석
우관(郵官) 역참에서 일을 보는 찰방과 역졸 등을 말한다.
월하(越下)의 군병 본문에서는 경군(京軍)을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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