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진은 논산과 강경포(江鏡浦)를 경유하며 〈백성을〉 안정시키는 일을 〈담당하였습니다.〉 논산 일대는 근래에 난리를 겪은 이후에 10집에 10집이 비었다고 할 만합니다. 보는 것마다 비참했기 때문에 비록 방(榜)을 내걸어 타이르기는 했지만, 조금씩 모여들어 23일에 이르러서야 시장이 제법 모양을 갖추었습니다. 노성(魯城)과 논산은 그사이에 지방관이 직접 순찰하며 특별히 타일러서 대부분이 돌아왔으나, 은진(恩津)과 논산의 경우에는 백성이 모두 의심을 하고 두려워하며 죄가 있든지 없든지 간에 흩어져서 관망을 하고 있습니다. 강경의 일개 포구는 논산에 비하면 조금 안정되었으나, 역시 모두 이산(離散)하여 안정이 되지 못했는데, 나중에 그들을 안정시킬 방도는 지방관이 어떻게 조처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공문을 보내니 민정(民情)을 헤아려서 은진 현감을 재촉하여 밤을 가리지 않고 내려가서 직접 각 마을을 돌며 빨리 〈백성을〉 불러 모을 방도를 도모하도록 해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