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보낸 편지
어제 오후에 진영을 떠나 임천(林川)으로 향했고 그 다음에 한산(韓山)에 이르렀는데, 일본인 소위(少尉) 아카마츠(赤松)가 병사 40여명을 인솔하여 장위영의 병사 100여명과 와서 주둔을 요청하였습니다. 얘기를 나누고 함께 길을 가서 한산의 가양동(佳陽洞)에 이르러 밤에 영관(領官)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일본군이 지금 나루를 넘어 임피(臨陂)와 함평(咸平) 등지를 향해 토벌을 하면 경리청(經理廳)의 2개 부대는 우선 주변의 여러 읍들을 돌며 서로 호응해서 토벌하려고 한다. 다시 통보를 기다려서 보령(保寧)과 홍주(洪州)로 떠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형세가 어쩔 수가 없어 그 말대로 할 계획입니다. 20일에 승리를 거둔 연유는 첩보(牒報)를 하였으나 어제 금영(錦營)의 인편에 보낸 것은 여기서 호남과는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금영 인편에 보낸 첩보가 다시 내려온 것을 보니 이 보고도 반드시 돌아올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대충 적어 태지(胎紙, 협지)로 보내니 보아주시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영관(領官)이 지금 아파서 누워있어 1대(一隊)는 그가 《몸을》 조리하는 것 때문에 주둔하고 있고, 다른 1대는 대관(隊官)·교장(敎長)과 함께 임천으로 향해 내일 합세할 계획입니다. 나머지는 할 말이 많으나 정신이 산란하여 이만 줄입니다.
24일에 추가하여 편지를 올립니다.
유 수문장(柳守門長)도 잘 지내고 있고, 조만간에 함께 갈 계획입니다. 여기에서 완영(完營)까지의 거리가 비록 100리에 지나지 않으나 그 사이의 길은 모두 비도(匪徒)의 소굴이기 때문에 위험을 끼고 가고 싶지가 않습니다. 이것을 헤아려서 나아가도록 해주시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집이 몇 리에 있으나 가서 보지 못하여 마음이 슬프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것은 본영(本營) 군관(軍官)의 편지입니다. 강항(强項)하다는 말은 크게 지나친 말이 아니니 어떻게 하면 금지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