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신정희가 보낸 편지
어제 편지를 받고 위로가 되었습니다. 밤사이에 영감께서 지내시는 형편이 좋으시고, 군중(軍中)도 편안하게 묵고서 오늘 평택(平澤) 등지로 출발을 합니까? 공주(公州)를 구하라는 전령(傳令)은 바로 금영(錦營)의 계문(啓聞, 감사가 임금에게 글로 보고하는 것)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먼저 내포를 따라 가는 것이 바로 오늘 병법의 요점인데, 오히려 등 뒤에 적을 풀어놓아 둘 수가 있겠습니까? 내포를 따라가서 공주를 구하는 것은 훌륭한 계책이라고 할 만합니다. 매우 대단하십니다. 일본군 사관(士官)과 상의하여 처리하는 게 어떠하겠습니까? 청영(淸營, 청주 병영)에 있는 군사의 숫자가 매우 많은데, 이 군사를 나누어 공주를 구하고, 탄약은 반드시 일관(日館, 일본 공사관)에 요청한 뒤에야 구해서 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관(日館)이 아직도 이것을 허락하지 않아 연달아 군무아문(軍務衙門)과 외서(外署, 외무아문)을 독촉하고 있으니 양해해주시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내포의 이창구(李昌九)와 박도일(朴道一)의 포(包)가 가장 창궐하여 그 거주지와 이름을 들은 듯합니다. 나머지는 이만 줄이고 편지를 올립니다.
18일 아우 정희(正熙) 올림.
계속하여 구원하는 것을 지금 특별히 조처하니 《이것을》 양해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