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7일 신정희가 보낸 편지
바로 처결하여 오래 지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지금 외서(外署, 외무 아문)의 편지를 보니, “탄환의 일은 어찌 어찌 되었다”고 했기 때문에 적어 보내니 스즈키(鈴木)에게 표를 얻어 보내주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이처럼 일의 형세가 매우 늦어져서 걱정스럽습니다. 나머지는 이만 줄이고 편지를 올립니다.
10월 27일 아우 정희(正熙) 올림
연달아 영감의 계씨(季氏, 막내 동생)와 대감의 편지를 받고 귀댁이 근래에 모두 편안하다니 축하할 만합니다.[缺字]그 사이에 금영(錦營)에 도착하였을 터인데 모든 형편에 손상이 없고 군중(軍中)도 편안한지요? 세성(細城)의 승리를 생각하니 매우 다행스럽습니다. 다만 온전한 승리를 거두지 못해 애석할 만하나 김복용(金福用)을 잡았는데, 그는 유명한 거괴(巨魁)입니다. 어찌하여 진중(陣中) 앞에서 목을 베어 백성들을 경계하지 않은 것입니까? 단지 선봉진(先鋒陣)에 조처를 요청합니까? 정말로 그 목을 받았습니까?[결자]10월 27일.
화성(華城, 수원) 유수(留守)가 요청한 인천항의 일본군이 홍주(洪州)의 내포로 가는 일은 의논하여 원만하게 처리한다고 하였습니다. 순무영(巡撫營)이 서양 창과 탄환을 요청한 《일은》 천안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 병관(兵官)의 표를 받아서 보낸 뒤에야 내어줄 수가 있습니다. 일본공사관에서도 일본군 병관에게 상세히 알아본다고 하였을 뿐입니다. 공주의 일본군 병관 스즈키(鈴木)가 가려고 한 일은, 우선 머무르고 가지 말라고 지시하였습니다.
천안에 머무르고 있는 일본군과 아군에게 공주에 나아가도록 지시했을 뿐입니다.
비도(匪徒)가 탄약을 만들려고 태인(泰仁)·금구(金溝)·흥덕(興德)·고부(古阜) 등지에서 염초를 샀는데, 그 숫자가 매우 많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 것은 찾아내어 없애지 않으면 안 되니 신임 완백(完伯, 전라 감사)과 면밀하게 상의해서 이목(耳目, 탐정꾼)을 많이 보내 있는 곳마다 찾아내어 몰수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만약 특별히 단속하지 않으면 폐단을 끼칠 듯하니 깊이 헤아려서 조처해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통위영(統衛營)의 진중(陣中)에서, “서울에서 출발할 때 20일 분의 식량·반찬·돈이 진중에 왔으나 아직도 나눠주지 않았다”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병사의 원망소리에 모골(毛骨)이 서늘해지는 이외에 군심(軍心)이 변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 가운데 참모관(參謀官)과 별군관(別軍官) 등의 아름답지 못한 일이 많이 있어 그들의 원망이 더욱 심하니 바로 설상가상(雪上加霜)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바로 군중(軍中)에게 전해져온 얘기들이니 충분히 헤아려주시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군관(軍官) 중에 먼저 보낼 사람은 이전의 편지에서 말한 대로 해주시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어찌 남겨둘 《사람과》 뽑아 보낼 《사람을》 구별하지 않아 이런 헛소문을 초래합니까? 충분히 헤아려서 《조치해주시고》 이 편지는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해주시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한산(韓山) 뒤편 두리봉(斗里峰)에서 멀리 보기 위해 가장 높은 봉우리에 망루를 세우도록 거듭 지시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그들의 흉악한 계획은 예측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