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년 11월 13일 이기동(李基東)이 보낸 답장
주신 편지를 받고 밤사이에 지내시는 형편이 좋으심을 아니 매우 위로가 되었습니다. 저는 밤새 고통스럽다가 한기(寒氣)가 지금 비록 조금 물러갔으나, 어깨의 담이 여전히 덜해지는 게 없으니 한탄스럽습니다. 어제 기찰(譏察)하는 포교(捕校)를 보냈는데 오늘 새벽에 비를 무릅쓰고 돌아와서 보고를 상세히 들었습니다. 비도가 아직도 경천(敬天)과 노성(魯城)에 있는데, 읍마다 무리를 모으고 있고, 분명히 연산(連山)의 두마평(豆磨坪)까지 일말(一抹)이나마 이어져서 진잠(鎭岑)으로 향하고 있다고 하였으나 아직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상지(上芝)에 모여 있다는 얘기는 아직 들어서 알지 못하여 다시 탐문할 계획입니다. 헤아려주시기를 바랍니다. 나머지는 가서 뵙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만 줄이고 답장을 올립니다.
갑오년 11월 13일 소인(小人) 이기동(李基東) 올림.
어제 온 순무영(巡撫營)의 처분에, 우발(牛撥)을 늘어세우는 일은 관문으로 기영(畿營)에 지시를 하였습니다. 이 도(道)는 일전에 적간(摘奸, 조사)을 하였으나 기읍(畿邑, 경기도의 읍)은 어떠한지를 모르겠습니다. 지금 화영(華營, 화성 군영)에 공문을 보내 연도(沿途)의 각 읍에 관문을 띄워 성명을 적어 올릴 계획입니다. 귀하의 진(陣)에서도 엄중히 각처에 지시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도사(都事) 홍유주(洪有周)를 귀하의 진(陣)에서 뽑아 쓰려는 뜻이 있다고 하는 얘기를 들은 듯합니다. 정말입니까? 반드시 단수(單數)로 거론할 필요가 없으니 진사(進士) 박영민(朴永民)도 함께 추천하는 게 어떠할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사람도 이 고을에 있는데, 진실로 참모감입니다. 만일 《당신의》 허락을 얻는다면 천안 수령에게 부탁하여 서류를 작성해서 아울러 귀하의 진에 보고하게 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