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년 11월 22일 익승(翊承)이 보낸 편지
일전에 편지를 보냈는데, 아직 받아보지 못하셨으리라 여겨집니다. 매우 추운 날씨에 영감께서 지내시는 형편이 편안하고, 그 사이에 승리를 거두어 조야(朝野)에 근심을 푸는 경사(慶事)가 있으나 반드시 괴로운 일의 단서가 많았을 것이니, 멀리서 매우 근심스럽습니다. 선전관(宣傳官)이 혹시 진중(陣中)에 들어와서 아직 큰 병이 없습니까? 다시 반드시 말을 할 필요는 없으나 이처럼 어리석은 자질로 출진(出陣)한다는 얘기를 듣고 매우 송구스러운 가운데 제 마음에 이것을 말하니 두려워서 꿈속에서도 놀랄 정도였습니다. 형께서 진중에 나가신 뒤에 내 마음이 위로가 되었고 태산(泰山)처럼 의지하고 있으니 한결같이 처음부터 끝까지 가르쳐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비록 선공후사(先公後私, 공적인 일을 앞세우고 자신의 사사로운 일은 뒤로 돌린다)라고 하더라도 외아들이 진중에 나아가니 어찌 한탄스럽지 않겠습니까? 매우 탄식스럽습니다. 성환(成歡)에 가는 길은 전에 2일이 걸리는 거리라고 하나 노인 걸음으로 가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겨우 40리 떨어져 있으나 가서 뵙지를 못한 것은 청운산객(靑雲山客)과는 현격하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봄부터 계속 입맛이 없고, 제 자식 놈이 떠난 뒤에 밥을 먹어도 내려가지 않아 체기 때문에 얼굴에 부기(浮氣)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고민하던 중에 각 진중에 변고가 없고 손자애가 건강하다니 매우 다행스럽습니다. 그러나 허다한 근심을 어찌 다 표현하겠습니까? 말씀 드릴 것은, 저번에 얘기한 저희 집안일을 여러 읍에 관문(關文, 공문)을 보내 공사(公私)간에 낭패한 데에 이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별군관(別軍官)을 계청(啓請, 계문하여 요청하는 일)하는 방도에 있어 송준영(宋峻榮)은 저의 종손(從孫)이니 계품(啓稟, 임금에게 상주하여 보고하는 것)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모두 뜻이 있어 말할 뿐입니다. 나머지는 이만 줄입니다.
갑오년 11월 22일 아우 익승(翊承) 올림.
본읍(本邑)의 소모군(召募軍)은 모두 훈련이 되지 않은 민정(民丁)입니다. 믿을 만한 것은 단지 사냥하는 포수 수십 명 뿐이나, 지금 대진(大陣, 본진)에서 부하(部下)에 두려고 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정말 그렇습니까? 대진은 비록 이런 군사가 없더라도 위엄을 행할 수 있으나 본읍에 이 포수가 없다면 장님이 지팡이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고 할 만합니다. 다시 돌려보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