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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9월 28일 [九月二十八日]

아뢰기를, “계하된 영남 선무사 이중하의 장본을 보니, ‘의흥 백성들의 소요사태의 장두(狀頭) 이장학(李章鶴)이 무리를 모아 고을로 들어와서 가옥을 불태우고 관장(官長)을 끌어내어 모래사장에 버렸습니다. 주동한 죄를 그가 이미 자복하여 지금 대구 진영으로 이감하였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반란의 괴수 이장학을 경상도 관찰사로 하여금 군인과 백성들을 대대적으로 모아놓고 효수하여 사람들을 경계시킨 뒤에 보고하도록 분부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아뢰기를, “지금 충청 감사 박제순의 등보를 보니, 병사(兵使) 이장회(李長會)의 보고를 낱낱이 열거하면서 ‘이달 24일에 비류 수만 명이 성 아래를 침범하였는데, 병사(兵使)가 직접 막아 싸워서 적도 수십 명을 죽이자 적이 비로소 물러나서 흩어졌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호남의 비도들은 서로 연락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감영과 병영의 힘으로는 막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방금 상당(上黨, 청주에 있는 산성)에서 병기를 잃었다는 급보를 들었는데 이번 보고가 뒤이어 올라왔습니다. 호서(湖西)의 감사와 병사가 평소에 대비하지 못하였으니 극히 소홀히 한 것입니다. 순무영에서 빨리 병사들을 징발하여 구원하러 가는 방도를 마련하여, 이 비도들을 빠른 시일 내에 소탕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여, 윤허를 받았다. 당일에 비답을 받았다.

주석
모래사장에 버렸습니다 당시 수령이 부정한 짓을 하게 되면 해당 고을의 백성들이 멍석말이를 하여 지경 밖으로 몰아내는 관례가 있었다. 죽이지만 않으면 처벌받지 않고 일정정도 용인되었다.
보고가 뒤이어 올라왔습니다 1894년 9월 김개남은 전봉준과 길을 달리하여 금산을 거쳐 청주병영의 공격에 나섰으나 실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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