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9일
영영(嶺營)이 보내온 전보에 “동도(東徒) 몇 백명이 성주(星州)에 들어올 것이라고 하여 이교(吏校)와 민정(民丁)의 방비가 매우 치밀하니 근심이 없을 만합니다. 그러나 그저께 자시(子時, 오후 11시~오전 1시)에 해당 수령이 《그들이 온다는》 소문을 듣고 겁을 먹어 영내(營內)로 몰래 피하니 방비를 하던 아전과 백성이 점차로 흩어져버렸고, 저들이 몰려와서 끝내 지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사정은 아직 듣지 못해 송구스럽고 울적합니다. 소식을 듣는 대로 장관(將官, 초관 이상의 무관)을 보내 우선 정탐을 하고, 한편으로 물러나서 《일을》 도모하여 다시 병사를 보내어 그들을 토벌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중군(中軍)이 데려간 병사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인근의 개령(開寧)과 김산(金山)등지의 읍도 모두 자체적으로 방비하고 있어 병사를 징발하기가 어렵습니다. 매우 손쓸 도리가 없습니다. 이후의 형편은 계속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전보를 보내는 것이 매우 어려워서 늘 중도에 지체되어 걱정스럽습니다.” 라고 하였다.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