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받아보고 일본군의 은밀한 요구를 살펴보았습니다. 저들이 말먹이를 많이 요청하여 그것을 여러 읍에서 징발하는 것은 선유원(宣諭員)이 마음대로 할 수 없어서 변통(變通)을 기다려야 할 듯합니다.
영백(嶺伯)이 보내온 전보는 바로 토포사(討捕使)에게 도착하였습니다. 11일에 보낸 전보에, “일본군 150명과 아군 100명은 곤양(昆陽)에 주둔하고, 다방면으로 뒤를 밟아 비도의 우두머리 임석준(林碩俊)을 잡았습니다”라고 하였다.
주석
토포사(討捕使)
대구부 판관인 지석영(池錫永)이 임시로 이 직책을 맡아 경상좌도의 농민군 토벌을 위해 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