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매영(梅營, 전라좌수영)에서 정부에 전보하기를, “군량은 준비하였으나 일본군은 오지 않고 동도가 와서 포위하여 위태로움이 조석 간에 있습니다. 부산에 있는 일본군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신속하게 동도를 토벌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매곤(梅梱, 전라좌수사)의 막하(幕下)에 있는 김학규(金學圭)가 28일에 영에서 출발하여 부산항에 도착해서 대신 전달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소모관(召募官)이 보내온 전보에, “14일에 수 만명의 적들이 운봉(雲峯)을 침범하기에 참모와 함께 은밀히 밤에 습격을 해서 1,000명을 베고 빼앗은 포와 창은 1,000여 자루가 넘을 정도로 크게 승리하였습니다. 18일에 6만명의 적들이 모여 침범을 하려고 하여 위태롭기가 조석 간에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소모관이 영영(嶺營)에 급하게 와서 간청하기를, “일본 공사에게 전보를 하여 일본군이 주둔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내려주신 목관방(木關防)은 남이 믿지를 않아 군기(軍機)가 많이 막혀 한탄스럽습니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