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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30일

16호(十六號)

공주에 전보하기를, “참의(參議) 이재정(李在正)은 노문(路文)을 잠시 둔 뒤에 돌아오라”고 하였다. 정부.
완백(完伯, 전라 감사)이 보내온 전보에, “전봉준은 19일에 논뫼(論山)에서 완영(完營, 전라 감영)에 들어갔다가 23일에 금구(金溝)로 도주하였고, 김개남은 청주에서 패한 뒤에 남원으로 달아났으며, 경병(京兵)과 일본군 300여명은 24일에 전주에 들어갔고, 200여명은 26일에 들어갔습니다. 25일에 1초(一哨, 군대의 부대 단위)는 금구로 가고 다른 1초는 남원으로 갔습니다. 완판(完判, 전주 판관)은 27일에 관아에 돌아왔고, 29일에 감영에 도착할 계획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재정이 보낸 전보에, “어제 금영(錦營, 충청 감영)에 도착했더니 비류는 전주 아래로 물러갔고 선봉은 완영(完營, 전라 감영)으로 향했습니다. 비류의 남은 무리가 서천(舒川) 등지에서 소란을 일으켜서 성하영이 또 크게 승리하였고, 이두황은 전라우도(全羅右道)로 향한 것은 명백합니다. 노문(路文)은 각처에 흩어져있어 쫓아갈 수가 없습니다. 노문의 일은 그만두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금영(錦營)이 보낸 전보에, “대관(隊官) 김명환은 소대(小隊)를 인솔하여 오늘 연산(連山)을 나가고, 성하영은 서천의 도적을 토벌할 것이라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17호(十七號)

영영(嶺營)에 전보하기를, “위무사에게 지시하여 신속하게 돌아와서 내무(內務)를 처리하게 하라”고 하였다. 정부 그믐.
금영(錦營)에서 보내온 전보에, “15일에 원평(院坪)에서 56명의 적을 죽였고 군물(軍物, 무기)과 곡식 및 가축 등을 많이 획득하였습니다. 금영에서 전주에 이르기까지 1명의 적도 보지 못했고, 전주에 들어오기 하루 전에 적이 도망하였는데 전주를 빠져나간 자들이 400명이 되었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주석
노문(路文) 공무로 지방에 가는 관리의 도착 예정일을 미리 해당 관아에 알리는 공문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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