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9일
영백(嶺伯)이 보내온 전보에, “각처의 소모사(召募使)는 정말로 조용히 지내고 있으나 상주(尙州)의 소모사만 행동거지가 매우 크고 읍을 돌며 폐단을 끼치는 것도 많습니다. 더욱이 각 읍에 통지하여 포군(砲軍)을 뽑고 군량으로 호(戶)마다 몇 되의 쌀을 마련하게 하는데, 무슨 일로 많은 포군을 뽑고 쌀을 백성에게 거두는 지는 말할만한 것이 아닙니다. 도내에는 지금 변고가 없는데, 이런 일 때문에 읍마다 시끄러워 매우 근심스럽습니다. 백성에게 쌀을 거두는 것은 지금 감결(甘結)을 보내 금지하였으나, 서로 간에 의지하는 부분이 없지 않으니 미리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소모사와 조방장(助防將) 및 토포사(討捕使)를 임명하는 공문을 주고받는 형식이 어떠하면 정당(停當, 사리에 맞다)하겠습니까? 휴이(攜貳, 서로 어그러져 믿지 아니하거나 딴 마음을 가짐)와 갈등이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지적해서 가르쳐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다시 보내온 전보에, “전보로 하교하신 뜻은 잘 알았습니다. 상주 소모사의 일은 지금 전보로 말씀을 드렸으나 유격장(遊擊將, 金奭中)이 청산의 평민을 침탈한 것은 매우 놀랍습니다. 지금 당장 소모사에게 공문을 보내고 상주 목사에게도 지시하여 바로 조사를 해서 정부에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