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금영(錦營)에서 보내온 전보에, “일본군이 청비(靑匪, 청산의 비도)를 크게 격파해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청주에서 보발(步撥)로 소식을 전해왔습니다”라고 하였다.
완영(完營)에서 보내온 전보에, “지형을 살펴보고 적의 사정을 참고하면 전주에 200명의 군사를, 금산(錦山)에 100명을 남원에 100명을 순천에 100명을, 나주에 50명을, 고부에 50명을, 담양에 50명을, 장흥에 50명을 주둔시키는 것이 사리에 맞을 듯합니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