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31호(三十一號)
7도안무사(七道按撫使)에게 전보하기를, “정조(正朝, 설날)에 봉진(封進)할 전문(箋文)은 표문(表文)으로, 주상전하(主上殿下)는 대군주폐하(大君主陛下)로, 왕세자저하(王世子邸下)는 왕태자전하(王太子殿下)로 호칭을 하라”고 하였다. 정부.
32호(三十二號)
“감사(監司)·유수(留守)·곤수(梱帥, 병사) 이하는 지금부터 상주(上奏)하지 말고, 사무를 분별하여 해당 아문에 보고를 하라. 참작하여 상주할 일은 명이 내리면 살펴서 시행하라”고 하였다. 정부.
금영(錦營)에서 보내온 전보에, “청주 병사(兵使)의 보고에, ‘구원병은 오지 않았고, 청주의 군대는 보은에 도착했으나 전진하지 못했다’고 하였습니다. 일본 공사관에 알아보아 각 병참(兵站)에서 언제 출병했는지를 물어서 바로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서산(瑞山)의 1대(一隊)가 오늘 도착하여 바로 보내려고 하며, 탄환이 떨어져서 보내주기를 요청해서 몇 상자를 사람을 시켜 보내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33호(三十三號)
금영에 전보하기를, “경병(京兵)은 일본군과 함께 내일 크게 일어나서 남쪽으로 내려가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