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34호(三十四號)
영영(嶺營)에 전보로 답신하기를, “전문(箋文)은 다시 올릴 필요가 없고, 장계(狀啓)는 감사와 유수 모두 중지하라”고 하였다. 정부.
35호(三十五號)
금영(錦營)에서 전보하기를, “무주부사(茂州府使)이탁(李倬)이 사조(辭朝, 조정에 인사를 하고 부임하는 것)를 면제하고 빨리 임소(任所)에 가는 일을 완백(完伯)에게 전하라”고 하였다. 정부.
완백이 보내온 전보에, “손적(孫賊, 손화중)의 일은, 최편함(崔片椷)에게 일본군 진영까지 그를 압송하게 하였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금영에서 보내온 전보에, “일본군 대위 미야케(三宅)와 상주 병참에 있는 주와바라(桑原)가 병사 50명을 인솔하여 상주와 청주의 병사와 합세해서 18일에 적을 격파하였습니다. 최(崔, 최시형)는 도망을 가고 그 무리는 흩어졌으며 보은 수령이 관아에 돌아왔습니다”라고 하였다.
다시 보내온 전보에, “매일 전주에서 금강(錦江)을 건너는 소와 말이 이어진 것처럼 매우 많았습니다. 군실(軍實, 군사에 관계된 모든 일)은 보고하고 회제(回題, 답신)를 기다려야 하지만 사사롭게 가져가서 오늘 집류(執留, 압류)한 것을 성책(成冊)하여 순무영에 보고하니 회답해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