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완백(完伯)이 보내온 전보에, “무주(茂朱)·금산(錦山)·진산(珍山)·임실(任實)·김제(金堤)등의 읍의 형편이 매우 시급합니다. 해당 수령을 밤을 가리지 않고 내려가도록 재촉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19일.
금영에서 보내온 전보에, “목천(木川)에서 보고하기를, ‘비류 수천명이 청안(淸安)에서 진천(鎭川)에 와서 주둔하였습니다’라고 하였고, 19일에 경병(京兵)이 출발했습니까?”라고 하였다.
다시 보내온 전보에, “은진(恩津)과 노성(魯城)의 백성이 말을 잃어버리고 와서 호소를 하기에 조사를 하려고 어제 그 사람을 비로소 잡았으나, 대부분 억세서 구속하기 어려운데다가 인마(人馬)가 먹는 비용도 적지 않습니다. 본도(本道)에서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면 치(尺, 증명서)를 검사하여 풀어주고 그 이름을 적어 빨리 보고하려고 합니다. 조사를 그만두고자 한다면 순영(巡營)을 통해 사람을 동진(銅津)에 보내어 조사해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원감(元監, 원산 감리서)에서 보내온 전보에 “전보를 잘 받았고 북백(北伯, 함경 감사)에게 마노(瑪瑙, 보배의 일종인데 선물인 듯)를 전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기백(箕伯)이 보내온 전보에, “대동 찰방(大同 察訪) 노덕순(盧德純)의 거처를 알지 못하고, 당사자도 새 명령을 듣지 못하여 지금에야 임소에 도착하였습니다. 아직 사조(辭朝)를 면제하는 처분이 없으니 지적하여 하교해주시고, 신임 자산(慈山) 수령을 내려가도록 재촉해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였다.